검찰 총장 “방문 늦어 죄송합니다”… 박종철 열사 부친 ‘문병’

입력 2018-03-21 06:12
문무일 검찰총장이 20일 부산 수영구의 한 요양병원에서 고 박종철 열사의 부친 박정기씨의 손을 잡고 31년 전의 고문치사 사건을 사과하고 있다. 왼쪽은 민주열사박종철기념사업회 변종준 이사. 뉴시스

“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20일 오후 2시 부산 수영구의 한 요양병원. 고(故) 박종철 열사의 부친 박정기(89)씨가 문무일 검찰총장의 손을 부여잡고 이렇게 읊조렸다. 문 총장도 고개 숙인 채 화답했다. “사과 방문이 늦어져서 죄송합니다.”

박 열사는 1987년 1월 14일 당시 서울 용산구 남영동에 있던 치안본부 대공분실에 강제 연행돼 고문을 받다가 사망했다. 치안본부는 “탁 치니 억 하고 죽었다”고 발표했지만 언론의 집요한 취재로 물고문 사실이 드러나면서 그해 6월 민주항쟁의 기폭제가 됐다. 문 총장은 지난해 12월 박상기 법무부 장관 등과 함께 극장을 찾아 박 열사 사건을 소재로 한 영화 ‘1987’을 관람했다.

아들을 가슴에 묻으며 “철아, 아부지(아버지)는 아무 할 말이 없데이”라는 말을 남겼던 박씨는 30여년이 흐른 지금 척추 골절 수술을 받고 병상에서 생활하고 있다. 문 총장은 침상에 누운 박씨를 바라보며 “긴 세월 고생 많으셨다. 그동안 너무 고생을 많이 시켜드려서 죄송하다”고 말했다. 박씨는 “어차피 벌어진 일이니까 (괜찮다)”고 답했다.

문 총장은 “저희는 1987년의 시대정신을 잘 기억하고 있다”며 “그 시발점이자 한가운데 박 열사가 있었다”고 말했다. 이어 “부친께서 하루빨리 건강을 회복하시기를 기원한다”고 했다.

문 총장은 지난달 초 홀로 박씨를 찾아 병문안을 했다. 외부에 알려지길 원치 않았다고 한다. 이후 ㈔민주열사박종철기념사업회 측이 박 열사와 부산 혜광고 동창인 김기동 사법연수원 부원장(검사장)을 통해 문 총장의 재방문을 요청했고 현직 검찰총장 최초로 과거사 피해자에 대한 공식 방문 사과가 이뤄졌다.

문 총장은 방문을 마친 뒤 “오늘 저희는 새로운 다짐을 하기 위해 이 자리에 왔다”며 “과거의 잘못을 되풀이하지 않고 이 시대 우리에게 주어진 사명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박 열사의 형인 종부(59)씨는 “먼 길 와 주셔서 감사하다”며 “다시는 이런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적절한 조처가 있길 바란다”고 했다.

양민철 기자, 부산=윤봉학 기자 liste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