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세암병원은 위장관외과 정재호(사진 왼쪽)‧노성훈(오른쪽) 교수 연구팀이 강남세브란스병원, 서울대병원, 국립암센터, 분당서울대병원, 화순전남대병원, 영남대병원 등 의료진과 함께 진행성 위암 환자 2858명을 대상으로 수술 후 사용하게 될 항암제가 효과가 있을지 예측할 수 있는 유전자검사법을 개발하는데 성공했다고 20일 밝혔다.
진행성 위암 환자가 상태가 수술 후 항암제 치료에 어떻게 반응할지 유전자검사로 진단하는 방법이 나오기는 처음이다. 이에 따라 연구팀은 유전자검사가 진행성 위암 치료의 패러다임을 바꿀 수도 있다고 기대하고 있다.
연구팀에 따르면 현재 2~3기 위암 환자의 경우 2012년 발표된 클래식(CLASSIC) 임상 시험결과에 따라 표준치료법으로 수술 후 항암치료를 받게 된다.
클래식 임상시험은 위암 수술 후 보조항암화학요법이 암의 재발을 감소시킨다는 효용성을 입증한 임상시험이다.
항암치료를 통해 수술로 제거한 조직 외에 미세하게 잔존할 수 있는 암 세포를 사멸시켜 치료율을 높이고 재발을 방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모든 진행성 위암에서 항암치료로 효과를 보는 것은 아니다. 개인에 따라 항암치료 효과에서 차이가 있지만, 지금까지 위암 환자의 항암제 적합성을 예측할 수 있는 진단 방법이 없어 수술 받은 환자는 항암치료를 받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해 왔다.
그러나 연구팀은 이번 연구를 통해 위암에서 종양의 유전자 특성에 따라 수술 후 항암제에 대한 효과가 다를 수 있다는 것을 세계 최초로 증명했다.
정 교수는 “1901년도에 지금과 같은 ABO식 혈액형을 처음으로 구분하기 전에는 자신의 혈액형과 적합한 수혈을 받는 것이 불가능했다”며 “이번 연구는 사람의 혈액형을 구분해 수혈을 하는 것과 같은 원리로 유전자 분석을 통해 각 개인의 종양형을 분류하고 그 특성에 따라 항암치료여부를 결정할 수 있는 분자진단 알고리즘을 개발한 것으로, 암환자도 종양형에 따라 최적의 치료를 선택하는 맞춤 정밀의료 시대를 열게 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연구팀은 다중 코호트 연구방법으로 2000년부터 2010년까지 위암 진단을 받은 환자 2858명의 유전자 분석을 통해 위암을 면역형(Immune subtype, IM)과 줄기세포형(Stem-like subtype, ST), 상피형(Epithelial subtype, EP)으로 분류했다. 유전자 발현 패턴 특성에 따른 종양형 분류 기준은 수술 예후와 항암제 효과 여부다.
면역형(IM)은 수술 후 예후가 좋은 반면 항암제가 반응하지 않는 특성이 있다. 항암제 효과면에서는 면역형(IM)은 항암제 치료를 해도 수술만 시행한 것과 비교해 예후가 더 좋아지지 않는다. 상피형(EP)은 수술만 받았을 때 비해 수술 후 항암치료를 받은 경우 예후가 좋아진다. 즉, 상피형(EP)은 항암제 효과를 기대할 수 있는 종양형이다. 줄기세포형(ST)은 다른 종양형에 비해 예후가 가장 나쁘다. 특이한 것은 줄기세포형(ST)중에서 상피형의 유전자를 동시에 발현하는 경우는 예후는 불량하지만 항암제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연구팀은 분류에 따른 결과를 실제 임상현장에서 환자에게 적용하기 위해 (주)노보믹스와 공동으로 각각의 종양형과 항암제 효과를 예측할 수 있는 유전자 분석 기반 진단기술(nProfiler)을 개발해 클래식 임상시험 환자 629명을 대상으로 검증했다.
그 결과 검사가 이루어진 625명 중 79명(약 13%)이 면역(IM)형으로 분류됐으며, 줄기세포(ST)형과 상피형(EP)형은 각각 265명(약 42%), 281명(약 45%)였다.
면역형의 경우 5년 생존율은 83.2%로 조사됐다. 면역형 환자를 다시 수술만 받은 환자군과 수술 후 항암치료를 받은 환자군으로 분류해 항암제 효과를 분석한 결과 수술 후 항암치료를 받은 환자군의 경우 5년 생존율은 약 80.8%였으며, 수술만 받은 환자의 경우 약 85.8%로 차이가 나지 않았다.
노 교수는 “수술 후 예후가 좋고, 항암제에 반응하지 않는 환자들은 굳이 항암치료를 받을 필요가 없다”며 “추가 연구가 필요하지만 진행성 위암 환자의 약 15~20%는 현행 표준 항암치료를 받지 않아도 될 것”이라고 말했다.
연구결과는 임사의학 분야 국제 학술지 ‘더 란셋 온콜로지(The Lancet Oncology)’ 최근호에 게재됐다.
이기수 의학전문기자 ksle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