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소리 음악극 ‘적벽’이 봄과 함께 돌아왔다. 지난해 초연에 이어 지난 15일 서울 중구 정동극장에서 재개막한 적벽은 판소리 ‘적벽가’를 춤으로 녹여낸 음악극이다. 판소리는 소리꾼 1명이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적벽은 판소리를 바탕으로 배우 19명이 나와 합창을 보여주면서 생동감을 더했고 춤을 극대화해 역동성을 끌어냈다. 한마디로 만물이 기지개를 펴고 역동적으로 활동을 시작하는 봄과 유독 어울린다.
적벽은 무엇보다 춤이 중심이 되는 작품이다. 배우들은 러닝타임 내내 현대무용뿐 아니라 스트리트댄스를 선보이며 흥을 더했다. 에너지를 북돋는 건 배우들이 연기하는 무대 정면의 바로 뒤에서 연주하는 밴드. 배우들은 드럼과 키보드 등 현대 악기와 아쟁과 대금 피리 등 전통 악기가 만드는 선율에 맞춰서 신명나게 춤춘다. ‘Z세대(1995년 이후 출생)'가 봐도 현대적으로 느낄 법한 록밴드 공연장 분위기다.
한가지 아쉬운 건 대사 전달 부분이었다. 지난해 초연 때도 지적이 나왔던 약점. 아무래도 다수의 배우가 춤에 초점을 맞췄고 작품에 한자어가 많이 들어가서 대사가 분명히 전달되지 않았다. 하지만 적벽의 줄기인 도원결의부터 적벽대전은 워낙 잘 알려져 있는 이야기이고 꼭 대사로 전하지 않아도 춤과 자막 등 흐름을 파악할 수 있는 장치들이 있어 공연을 보는 데 큰 장애가 되지는 않는다.
부채의 활용은 적벽의 가장 큰 매력이다. 배우들은 부채를 수시로 펄럭펄럭 펼치면서 창 방패 불길을 상징적으로 표현한다. 유비의 독무부터 제갈공명이 남동풍을 불러와 조자룡이 활을 쏘는 장면까지. 부채는 안무와도 연결돼 활동성을 추가한다.
올해 최대 변화는 소리와 미니멀리즘이다. 배우 중 소리꾼의 비율을 높였고 유미리 명창이 작창과 소리 지도에 첫 참여했다. 무대 구조와 소품도 단순하게 만들었고 의상의 색깔을 통일해서 변화를 줬다. 정호붕 연출가는 18일 국민일보와의 통화에서 “지난해에는 전체적으로 무대가 어두웠다면 올해는 밝은 무대를 꾸몄다”며 “적벽의 색깔인 빨간색을 돋보이기 위해 흰색을 많이 쓰는 변화를 줬다”고 밝혔다.
올 첫 작품 적벽을 올린 정동극장은 고전을 무대화한 전통공연을 선보인다. 1995년 한국 최초 근대식 극장 원각사 복원이라는 역사적 의미를 안고 개관했다. 뮤지컬 ‘판’과 ‘청춘만발’ ‘창작ING 시리즈’도 한다. 덕수궁 인근이라 데이트 코스로도 좋다. 다음 달 15일까지. 3만~5만원.
권준협 기자 gao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