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18일(현지시간) 치러진 대통령 선거에서 사실상 당선됐다. 최종 집계 결과가 나오지 않은 상황에서 사실상 승리 선언을 했다. 출구조사는 푸틴 대통령이 73.9%나 득표할 것으로 예상했다. 확정될 경우 4번째 임기를 맞이하게 된다.
이어진 기자회견에서 취재진이 이번 6년 임기를 마친 뒤에도 계속 출마할 것인지 묻자 푸틴 대통령은 모호한 답변을 내놨다. 러시아 헌법의 연임금지 조항 때문에 2024년엔 출마할 수 없는 그에게 기자들은 2030년 대선 출마 가능성을 물었고, 푸틴 대통령은 “웃기는 질문이다. 여러분은 내가 100살까지도 이 자리에 앉아 있을 것으로 생각하는가”라고 했다.
이번이 마지막 임기라고 확답은 분명히 아니었다. 재출마 가능성을 ‘웃기는 질문’이라고 했지만 여지는 남겨뒀다. 이번 대선 승리로 푸틴 대통령은 소련의 독재자 스탈린 이후 최장기 집권자가 됐다. 많은 사람들은 그가 대통령 연임불가 헌법조문을 개정하거나 다른 종류의 직위를 만들어 이동해서라도 계속 권좌에 앉아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이를 위해 헌법을 개정할 용의가 있는지 묻는 질문도 나왔다. 푸틴 대통령은 “그럴 계획은 없다”고 답했다. 또 새 내각 구성에 대해서는 취임식이 끝난 다음에 결정하겠다고 말했다.
이번 러시아 대통령선거는 ‘어차피 푸틴’ 투표였다. 외신들은 투표일 풍경을 이렇게 전했다.
‘모스크바 북서쪽 트베르주에 사는 여대생 마리아 코노발로바(19)는 18일(현지시간) 오전 집 근처 투표소로 향했다. 다른 후보자에게 표를 던질 생각은 처음부터 없었다. 마리아는 푸틴 대통령의 골수 지지자는 아니다. 다만 푸틴이 아닌 다른 지도자는 본 적이 없다. 러시아의 젊은이들은 푸틴을 요지부동의 권력으로 인식하고, 대안을 찾을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다.’
푸틴 대통령은 1999년 6대 러시아 총리에 취임한 이후 20년째 권력을 잡고 있다. 이번에 임기 6년을 추가하면 26년을 집권하게 된다. 러시아 정계에서 푸틴이 독주하는 가운데 정치에 관심 없는 러시아 젊은이들이 푸틴을 덮어놓고 지지하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는 분석도 나왔다.
영국 일간 가디언은 “푸틴이 발전시킨 나라에서 태어나고 자라 푸틴을 지지하는 젊은 세대에게 푸틴 이외의 선택지는 없다”면서 “푸틴을 반대할 이유가 없는 것일 뿐 러시아 젊은층이 하나의 정치적 성향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라고 보도했다.
마리아와 같은 젊은 세대의 지지는 그녀가 일자리를 얻고 새로운 가정을 꾸리기 시작하는 다음 대선까지는 푸틴의 권력을 유지시키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 하지만 푸틴이 국가를 강하게 만들고 경제를 발전시켰기 때문에 푸틴을 지지하는 젊은이들은 반대로 경제적으로나 국제적으로 러시아가 고립된다면 푸틴을 더 이상 지지하지 않게 될 수 있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실제로 러시아 젊은층은 푸틴의 지지 세력이기도 하지만 야권의 반정부 시위의 한 축을 이루고 있기도 하다. 카네기 모스크바 센터 연구원 콘스탄틴 가제는 “지지층에게 푸틴이 신화적 인물일 수 있는 건 푸틴 없는 러시아의 모습을 상상하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워싱턴포스트(WP)는 푸틴의 지지율이 70%에 가까운 것으로 나타나지만 투표율이 계속해서 떨어지는 추세는 의미하는 바가 크다고 분석했다. WP는 “투표율이 낮은 것이 푸틴이 인기가 없다는 증거는 아니다”면서 “‘어차피 푸틴인데 뭐하러 투표해?’ 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는 러시아인이 대다수”라고 전했다. 특히 젊은 유권자들은 푸틴을 지지하지만 투표나 정치엔 관심이 없다는 점을 강조했다.
러시아 정부는 이번 선거에서 투표율을 끌어올려 푸틴에 대한 신뢰를 숫자로 입증하려 고군분투했다. 정부 관계자는 가디언에 “크렘린은 젊은 사람들이 2024년 대선까지 정부를 지지해주길 원하며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고 귀띔했다. 가디언은 또 “푸틴을 이을 지도자가 여전히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외교 갈등을 비롯해 안팎으로 해결할 문제는 쌓여만 간다. 이런 상황에서 러시아인들의 정치적 무관심은 미래에 큰 문제가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태원준 기자 wjta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