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 된 ‘페북 디스토피아’… 무방비 털린 SNS 정보

입력 2018-03-19 06:57
뉴시스

2016년 미국 대선 당시 페이스북에서 빠져나간 약 5000만명의 개인 심리 데이터가 특정 진영의 정치적 목적에 유용됐다는 폭로가 나왔다. 페이스북이 만들어진 이래 최대의 개인정보 유출 사건이다. 무의식적으로 기록된 개인의 취향이나 정치성향 등 빅데이터가 불법 활용돼 정치적 결과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밝혀지면서 이른바 ‘페이스북 디스토피아’가 실현된 게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영국 옵저버와 미국 뉴욕타임스는 미 대선 당시 도널드 트럼프 후보 캠프의 데이터 분석기업 케임브리지애널리티카가 페이스북 이용 유권자 약 5000만명의 심리 데이터를 불법 수집, 분석해 활용했다고 17일(현지시간) 이 회사 전 직원 크리스토퍼 와일리(28)의 증언과 관련 문서를 인용해 공동 보도했다. 영국 정보위원회(ICO)는 이 업체가 같은 해 영국의 브렉시트(유럽연합 탈퇴) 투표에도 유권자들의 데이터를 불법으로 활용했다고 보고 조사 중이다.

폭로에 따르면 이 업체는 학술적 이유로 정보에 접근할 수 있는 알렉산드르 코건 케임브리지대 교수에게 대가를 지불하고 그를 통로로 페이스북에서 사용자 데이터를 수집했다. 헤지펀드 투자자이자 공화당 거액 기부자 로버트 머서가 1500만 달러(약 160억원)를 업체에 투자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전 참모 스티브 배넌 전 백악관 수석전략가가 이번 일을 기획했다.

이 업체는 확보한 데이터를 폭로자인 와일리의 기술로 분석해 선거광고와 이미지메이킹, 결과 예측에 적극 활용했다. 와일리는 옵저버에 “결국 난 배넌이 벌인 심리전쟁에서 사람들의 정신을 망가뜨리는 도구를 만든 셈”이라고 말했다. 그간 페이스북상 개인 정보가 주요 정치적 이벤트에 활용됐다는 의혹은 수차례 제기된 적 있으나 이처럼 구체적인 정황과 규모가 드러난 것은 처음이다. 케임브리지애널리티카 측은 정보를 빼낸 사실을 전면 부인하고 통로였던 코건 교수에게 책임을 전가하고 있다.

그렇잖아도 최근 가짜뉴스 확산으로 비판을 받은 페이스북은 이번 사건을 다루면서도 사태 축소에 급급했다. 페이스북은 보도 하루 전인 지난 16일에야 SCL과 케임브리지애널리티카를 ‘정책 위반’ 사유로 계약금지시켰다. 사건을 이미 인지했을 것으로 추정되는 지난달 영국 의회 청문회에서도 사이먼 밀너 페이스북 영국지사 정책디렉터는 케임브리지애널리티카가 페이스북의 데이터를 갖고 있지 않다고 증언했다. 뒤늦게 법적 조치와 유출 정보 완전 삭제 등을 약속했지만 비난을 피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조효석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