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윤택 전 연희단거리패 예술감독이 18일 오전 서울경찰청에 재출두했다. 안희정 전 충남지사는 19일 오전 서울서부지검에 출두한다. 두 사람은 모두 ‘권력관계’에서 약자에 속하는 이들에게 성폭력을 행사한 혐의를 받고 있다. 하지만 쟁점은 조금 다르다. 이윤택 전 감독은 ‘성폭력이 상습적이었느냐’에 따라 처벌 여부가 결정될 상황이고, 안희정 전 지사는 ‘성관계가 강압적이었느냐’를 놓고 법률적 다툼을 벌이게 됐다.
◆ 경찰, 이윤택에 2010년 신설된 ‘상습죄’ 조항 검토
전날 15시간 조사를 받고 귀가한 뒤 다시 경찰청에 나온 이윤택 전 감독은 “혐의를 인정하느냐”는 취재진 질문에 “사실대로 진술하고 있다”고 답했다. 이후 이어진 질문에는 별다른 말을 내놓지 않은 채 조사실로 향했다.
그는 17일 오전 9시50분 출석해 서울지방경찰청에 18일 오전 1시10분까지 조사를 받았다. 조사를 마치고 나오며 지친 표정으로 “피해자분들에게 다시 한 번 사죄드린다. 성실히 수사에 임하겠다”고 말했다.
당시에도 “혐의를 인정하느냐”는 질문이 나왔지만 그는 답하지 않고 준비된 차량에 올라 청사를 빠져나갔다. 이 전 감독은 1999년부터 2016년 9월까지 여성 연극인 16명을 성폭행 및 성추행한 혐의를 받고 있다. 피해자들은 최근 확산된 미투 운동을 통해 폭로했고 지난달 28일 이 전 감독을 검찰에 고소했다.
경찰은 지난 5일 이 전 감독을 출국금지하고 주거지와 연극단 사무실 등을 압수수색했다. 그의 성폭력 의혹은 친고죄가 폐지된 2013년 이전에 발생했지만 경찰은 2010년 신설된 상습죄 조항을 적용해 처벌이 가능할 것으로 보고 있다. 경찰은 이날 2차 소환조사를 마친 뒤 구속영장 신청 여부를 결정할 방침이다.
◆ 피해자 “성폭행당했다” vs 안희정 “애정행위였다”
서울서부지검은 19일 오전 10시 안희정 전 충남지사를 소환해 성폭행 혐의를 조사한다. 검찰은 최초 폭로자 김지은씨에 이어 두 번째 피해자 A씨에 대한 고소인 조사까지 마무리하고 18일 안 전 지사 측에 이 같은 소환 일정을 통보했다. 주변 인물들에 대한 참고인 조사도 상당부분 진행된 것으로 알려졌다.
안 전 지사는 지난 9일 검찰의 소환 통보 없이 자진 출두해 1차 조사를 받은 상태다. 9일 오후 5시쯤부터 다음날 오전 2시30분까지 9시간30분 동안 피의자 조사를 받았다. 당시 안 전 지사는 귀가하며 “앞으로 검찰 조사에서 제가 갖고 있던 객관적인 사실에 대해 사실대로 말하겠다. 모욕감과 배신감을 느꼈을 많은 분께 정말로 죄송하다”고 말했다.
그러나 “혐의를 인정하느냐”는 질문에는 “앞으로 검찰 수사와 진행 과정에서 계속 이야기될 것”이라며 말을 아꼈다. 김지은씨를 향해 “나를 지지하고 나를 위해 열심히 했던 내 참모였다. 미안하다. 그 마음의 상실감과 배신감, 다 미안하다”고 말하기도 했다.
이런 사과와 별개로 안 전 지사는 두 피해자가 고소한 혐의에 ‘방어논리’를 만들어야 하는 상황이다. 김지은씨와 A씨는 모두 ‘위력에 의한 간음·추행과 강제추행’ 혐의로 안 전 지사를 고소했다. 하지만 안 전 지사 측은 “성관계는 있었으나 강압은 없었다”는 입장을 밝히고 있다.
안 전 지사의 법률대리인은 지난 16일 뉴시스와의 통화에서 “(두 사건에 대해) 안 전 지사는 기본적으로 남녀 간 애정행위이고 강압이란 것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생각이다. 성과 관련한 부분에선 지금까지 그렇게 해왔다는 입장”이라며 “(두 번째 고소 건은) 시간이 오래되고 일정이 빡빡했다보니 혹여 기억하지 못하는 부분이 있는지 기억을 더듬고 있다. 장소 같은 세세하고 구체적인 부분은 기억을 해내는 중”이라고 전했다.
안 전 지사 측 방어논리는 “성관계에 강압이 없었다”는 것과 함께 “업무상 위력을 가할 위치에 있지 않았다”는 주장도 포함하고 있다. 피해자 A씨가 속해 있던 연구소 ‘더연’에 안 전 지사가 영향력을 행사할 상황이 아니었다는 것이다. 더좋은민주주의연구소는 안 전 지사가 주도해 설립한 싱크탱크이고 그가 2010년까지 초대 소장을 지냈지만, A씨가 범행을 주장하는 2015~2017년에 공식 직책이 없었다는 게 근거다.
태원준 기자 wjta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