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섭단체’ 평화+정의당… 복잡해진 국회 ‘보수-진보’ 지형도

입력 2018-03-18 10:12

정의당과 민주평화당이 국회 공동교섭단체 구성 협상에 착수키로 했다. 정의당은 17일 전국위원회를 열어 평화당과 원내 공동교섭단체를 구성하는 협상에 나서기로 의결했다. “적폐청산과 개혁이 국회에서 멈춘 현실을 타파하고 촛불민심을 실현하기 위해서”라고 밝혔다.

이정미 정의당 대표는 “공동교섭단체를 추진하는 이유는 오로지 촛불혁명을 전진시키려는 것”이라고 했다. 최석 대변인은 “여러 전국위원이 당의 정체성과 지방선거에서의 혼란 등을 이유로 반대와 우려를 표했다”며 “이런 점을 충분히 고려해 협상을 추진하기로 했다”고 설명했다.

두 당이 국회에서 같은 목소리를 내는 교섭단체가 될 경우 더불어민주당, 자유한국당, 바른미래당의 현행 3개 교섭단체 체제는 4개 체제로 재편된다. 현재 의석수는 민주당 121석, 한국당 116석, 미래당 30석이다. 비교섭단체로 평화당이 14석, 정의당이 6석을 갖고 있다.

국회 교섭단체가 되려면 20석 이상을 확보해야 한다. 평화당과 정의당 의석을 더하면 꼭 20석이 돼 요건이 충족된다. 여기에 무소속 이용호 의원이 합류할 것으로 알려졌다. 그럴 경우 평화·정의당 교섭단체는 21석의 원내 4번째 교섭단체가 된다.

바른미래당 통합에 이어 평화·정의당 교섭단체 구성으로 국회 지형은 문재인정부 출범 당시와 매우 달라지게 됐다. 여소야대 상황은 같지만 그 성격이 변화했다. 당초 국회는 여야 4개 정당이 각각 교섭단체를 구성하고 있었다. 제1당이자 여당인 민주당, 제1야당인 한국당, 제2야당인 국민의당, 제3야당인 바른정당이 국회의 좌우 스펙트럼에 나란히 포진했다.


네 교섭단체를 진보 성향일수록 왼쪽에, 보수 성향일수록 오른쪽에 배치할 경우 왼쪽부터 ‘민주-국민-바른-한국’ 순으로 놓으면 됐다. 정의당은 민주당보다 더 진보적 색채를 갖고 있지만 교섭단체 논의에 끼지 못했다. 바른정당은 한국당과의 차별화를 위해 중도에 가까운 목소리를 유지했고, 국민의당은 그보다는 왼쪽에서 민주당과의 차별화를 시도했다.

당시 캐스팅보트는 단연 국민의당이 쥐고 있었다. 정부여당은 국회에서 막히는 여러 사안마다 국민의당의 도움을 얻어 돌파하곤 했다. 인사청문회가 그랬고 입법이 필요한 정책도 여러 건 제3정당의 힘을 빌어 국회를 통과시킬 수 있었다. 한국당은 그런 국민의당을 ‘2중대’라고 비난했다.

이랬던 국회 스펙트럼은 평화당과 정의당이 공동교섭단체를 구성할 경우 달라지게 된다. 평화·정의당은 이념 성향에서 민주당보다 왼쪽에 놓일 가능성이 크다. 정의당은 존재 이유로 삼고 있는 진보적 의제들을 교섭단체 구성 협상에서 관철시키려 할 것이다. 그 목소리를 두 당이 함께 대변할 경우 좌우 스펙트럼의 가장 왼쪽에 가장 진보적인 제4세력이 생긴다.

‘민주-국민-바른-한국’의 원내 지형이 ‘민주-바른미래-한국’을 거쳐 이제 ‘평화·정의-민주-바른미래-한국’으로 바뀔 경우 의제마다 국회 논의 양상이 크게 달라질 것으로 보인다. 평화·정의 교섭단체는 정부여당의 각종 정책에 반대보다 지원하는 목소리를 더 많이 낼 가능성이 크다. 특히 외교안보와 개혁 정책에선 적극적인 지지세력으로 자리 잡게 될 수 있다.

하지만 ‘캐스팅보트’ 역할을 하기에는 평화·정의 교섭단체의 21석이 충분치 않다. 옛 바른정당 의원 상당수가 한국당에 복귀하면서 제1당(민주당)과 제2당(한국당)의 의석이 엇비슷해진 터에 30석의 바른미래당이 중간에 버티고 있어 평화·정의당의 목소리가 대세를 좌우할 파괴력을 갖기는 어려워 보인다.


현 의석수로 단순히 계산하면 민주당(121석)과 평화·정의당 교섭단체(21석)는 142석을 확보하게 된다. 바른미래당(30석)이 한국당(116)과 같은 주장을 펼 경우 범보수 진영은 146석의 힘을 갖는다. 여기에 또 다른 변수가 있다. ‘142석 대 146석’의 구도는 산술적 계산일 뿐이다. 바른미래당 소속인 박주현 이상돈 장정숙 의원은 사실상 평화당과 함께 활동하고 있다. 비례대표 의원직 유지를 위해 몸만 바른미래당에 있을 뿐이어서 이들을 범진보 진영에 넣을 경우 145석 대 143석이 된다.

국회 교섭단체 지형은 이처럼 거대 여당과 거대 야당 사이에 범진보와 범보수의 중소 정당이 하나씩 끼어 있는 모양새가 됐다. 누구도 확실한 다수 의석을 갖지 못하고, 누구도 확실한 캐스팅보트가 될 수 없는 구조다. 6·13 지방선거와 함께 실시되는 재·보궐선거는 한층 더 중요해졌다. 대법원은 현재 국회의원 6명의 의원직이 걸린 재판을 진행 중이다. 미니 총선 규모로 재보선이 확대될 경우 국회 판도는 다시 달라질 수 있는 상황을 맞이한다.

태원준 기자 wjta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