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건표 교수의 연극이야기] 58. 대구에서 들리는 박근형 연출 대구시립극단 “해방의 서울”

입력 2018-03-18 09:29

지난해 7월, 극단 골목길에서 초연되었던 박근형 작, 연출 <해방의 서울>이 지난 9일부터 10일까지 대구 봉산문화회관 (가온홀)에서 공연됐다. 대구에서 맞은 <해방의 서울>이 대구시립극단 배우들과 박근형 연출의 조합이라는 점에서 관심을 끌었다.

<만주전선> 이후, 친일(親日)혼혈성을 풍자하고 죽도록 달리는 박근형 연출

<해방의 서울>은 1945년 8월 15일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일본천왕이 연합군에 항복하는 폐전소식이 떨리는 음성으로 흐르기 전 오전 상황이다. 조선 식민지사회의 당대 최고 여(女)배우인 극중 인물 지화정(백은숙 분)과 악극배우 양철(강석호 분)을 중심으로 일본인이 경영하는 ‘기무라키네마’에서 <사쿠라는 피었는데> 영화 마지막 장면을 촬영하는 현장이 배경이 된다.

박근형은 친일의 혼혈성을 조선 500백년 역사와 숨결이 흐르는 ‘창경원 춘당지 연못’으로 <사쿠라는 피었는데> 촬영장소로 만들고 친일의 혼혈을 부착한 당대 최고의 배우들을 소환해 마지막 장면을 남겨두고 있다. 그날의 ‘해방’으로 마지막 장면은 재촬영 되어야 할 미완으로 역사로 남겨둔다. <해방의 서울>은 여전히 정화되지 않는 혼혈된 사회를 향한 문제제기다.
이번에는 조선의 대표적인 배우 가슴에 친일의혼혈성을 부착하고 풍자와 조롱의 날을 세운다.

때로는 황당한 작품설성과 도려내지 않은 오염된 환부를 향해 집요한 시선과 날카로운 풍자로 죽이 되든, 밥이 되든, 죽도록 달리는 박근형식 연극을 황당한 장면설정으로 비틀고 현실을 비켜서있는 것으로 치부하기에 연출의 돌려차기 풍자는 매섭다. 박근형의 ‘친일역사인식’ 은 오늘날 한국사회에 혼혈성의 전류가 흐르고 있는 지배 권력이며 특권계층이다. 친일의 혼혈된 역사는 과거로 종결 된 것이 아니며, 여전히 동시대로 소환되어 치유되어야 할 살아있는 역사인식이다.

이번 <해방의 서울>은 해방 70년을 지나온 대한민국 사회에 여전히 친일의 혼혈이 오염된 사회를 겨냥하고 있다. 연극 속에서 극중극으로 재현되는 <사쿠라는 피었는데> 마지막 리허설 장면인 여주인공(지화정)이 물속에 빠져 죽는 장면이 미완성되어 해방의 서울을 맞이한다. 여전히 대한민국사회는 마지막 장면을 남겨두고 있는 것이다. 연출은 해방소식을 라디오로 듣는 마지막 장면에서 전쟁패전으로 노쇠한 ‘기무라키네마’ 사장의 아버지(이동학 분)을 등장시킨다. 피지 못한 미완의 역사는 ‘사쿠라가 만개한 시간으로 돌아 갈 것’ 같은 분위기를 쏟아내며 조선총독 아베 노부유키 고별사와 오마주 시킨다. 음성에서 흘르는 ‘일본제국주의’ 섬뜩함은 ‘야스쿠니 신사’ 부활을 울려대며 오늘날 우경화의 일본정치를 장전하고 있다

오염된 환부가 도려 질 때까지 죽도록 달리는 박근형은 ‘쥐’(1998)를 출발로 인간의 부조리와 삼류인생, 남루한 삶과 잔혹한 내면의 세계를 다룬 ‘청춘예찬’(1999) 함몰된 전쟁의 역사와 아버지의 부재 ‘경숙이, 경숙이 아버지’<2006>는 친일(親日)과 진실된 역사의 부재를 파고들고 있는 ‘만주전선’<2014> 대한민국 정치의 실종을 전면적으로 내세워 한국정치(史)의 모순과 오염성을 그려내고 있는 <선착장에서>(2005), <돌아온 엄 사장>(2008), ‘엄 사장은 살아있다’<2015> 3부작 시리즈를 선보여 왔다.

한국사회에서 더 이상 놀랄 것도 없는 세계를 담아내는 ‘너무 놀라지 마라’(2009)와 전쟁의 기억과 진실의 부재현상을 (대한민국 군인, 일본제국주의, 이라크 파병, 초계함) 등으로 풀어낸 ‘모든 군인은 불쌍하다’(2016), 박정희 전 대통령을 풍자하고 있는 <죽이 되든 밥이되든 >(2016)과 <해방의서울>(2017)까지 박근형은 극단 골목길 표현방식으로 연극을 풀고 조여맨다. 때로는 어수룩한 작품구조와 황당함으로 치닫는 연출발상에서도 본질을 마주하게 만든다.

<해방의 서울>박근형과 대구시립극단 배우들의 조합


올해 창단(1998) 20년 된 대구시립극단은 연극의 무거움 보다는 시민과 함께, 찾아가는 연극과 다양한 연극 장르를 무대에 올리면서 지역연극 활성화를 견인해왔다. 최주환(예술감독·상임연출)은 2015년도(3월)부터 대구시립극단을 이끌면서 뮤지컬과 연극 등 다양한 작품들을 지역에 소개해 왔고, 대구가 뮤지컬·연극도시로 활성화되는데 높은 기여를 하고 있다는 점에서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최 감독은 레미제라블(2015)을 시작으로 여성최초 비행사 권기옥의 삶과 시대의 역사성을 연극·뮤지컬로 최초 그려낸 ‘비갠하늘’과 ‘비상’(2016), 갈매기(2016), 가족연극 ‘똥글뱅이 버스’(2017)를 연출하면서 대구시민관객층을 흡수해왔다. 특히 올해 5월에는 대구방송(TBC)와 공동제작으로 창작뮤지컬 ‘반딧불’(연출 최주환)을 준비하고 있다. 박근형의 <해방의 서울>(2018)은 콜라소녀(2015·최용훈) 몽키열전(2017·나상만) 리어왕(2017·김미정)이어 외부연출가전 네 번째 공연이 된다.

이번<해방의 서울>도 당대 조선의 대표적인 배우들을 무대로 등장시켜 그 혼혈성을 풍자하고 조롱한다. 36년 식민조선의 역사는 민족성이 훼손 된 친일 혼혈사회였다. 영화계도 예외는 아니였다. 뼈 속 까지 일본인이 되려는 일부 조선인들은 제국일본의 프로파간다를 통해 철저하게 친일혼혈성을 보였고, 조선영화 정책의 영화검열은 일본제국주의의 선전물로 활용됐다. 흥행취재규칙(1905) 시행하면서 공연예술분야의 통제를 각 지방 경찰부에서 담당해 오던 것을 1940년대 초 조선총독부는 제181호로 ‘조선영화령’을 공포하고 그해 법령을 시행한다.

이듬해는 영화인 등록제를 실시하면서 당시 조선사회에서 활동하던 배우들은 일본의 통제로 들어 올 수밖에 없었다. 조선영화령 공포 이후부터는 일본제국주의 영화의 검열성이 제작과 배급, 스토리와 흥행 전반을 통제해 왔다. 영화를 프로파간다 일본제국주의 선전물로 활용되면서 일부 영화 제작사들은 조선사회<해방의 서울>을 라디오로 듣기 전까지 ‘친일영화’남겼다.

조선영화를 이끌던 배우들로 친일의 혼혈성을 비켜갈 수 없었다는 점에서 박근형의 <만전주선> 이후에도 친일의 혼혈된 사회를 향해 던지는 냉철한 시선과 문제제기가 향하고 있는 지점은 ‘73년 해방의 서울’은 여전히 정화되지 않은 오염된 사회를 향한다. 청산되지 않는 역사는 온전한 해방의 서울이 아니라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박근형 연극 <해방의 서울>은 식민역사에서 스타로 추앙받던 배우들이 등장인물로 분해 감정의 ‘진실성’을 외친다. 혼혈의 소리는 허공을 향할 뿐이다. 양철 악극배우(강석호 분)이 마지막 장면을 연습하며 상대배우에게 살아 있는 연기를 체득하기 위해 “내 조국의 사쿠라 하나 지키지 못한다면” 이라는 대사를 토해내면서 “대사를 찌르고, 굴신, 항문의 힘!” 을 외치며 온 힘을 다해 대사를 찌르며 쏟아내는 장면은 진실의 내면이 비어있는 이들에게 조롱의 날을 들이대고 풍자로 희극화 된다.

<해방의 서울> 사쿠라 꽃이 피었는데...

무대는 1945년 8월15일 천왕의 폐망의 음성을 라디오로 전파를 타기 전 창경원 춘단지 연못 어느 근처의 여름, 촬영장소다. ‘기무라키네마’ 라고 선명한 로고가 박혀진 촬영대기실은 이동식 야외천막으로 둘러싸고 그 안으로는 1940년대 영화포스터가 붙여져 있다. 독일제 라디오, 축음기, 장고 등이 뒤섞여 놓여있다.

배우가 되기 위해 지화정 문화생인 신소이(김정연 분)는 정오까지 마지막 남은 장면촬영을 기다리는 지화정(백은숙 분)을 연신 부채질 하고 있다. 지화정은 현대적인 신파조로 당대 조선 최고의 여배우를 들어내며 우스꽝스러운 동작을 섞어대며 일본인이 만든 <사쿠라는 피었는데> 출연하게 된 것과 ‘배우의 품격’, ‘품격이야 말로 예술가의 생명’ 이라는 점을 문하생에게 설명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당대 조선의 대표적인 여배우로 값비싼 까르피스<칼피스음료>만을 마셔대며 최백홍 선생의 문하생 시절부터 몸으로 체득시켜온 배우의 품격과는 대조적인 천박스러움과 목소리로 품격을 지탱한다. 영화<사쿠라는 피었는데>는 마지막 장면은 조국의 사쿠라를 지키기 위해 태평양 전쟁터로 남편을 떠나보내는 장면이다. 지고지순한 한 조선의 여인으로 분한 영화 속 지화정은 풍전등화 같은 위태로운 조국을 지키기 위해 어린 딸과 늙은 아버지를 남겨두고 전쟁터로 나가는 것을 망설이는 남편을 원망하며 모녀가 연못(창경원 춘당지)에 빠져 죽는 것으로 설정된다. 죽음의 희생을 통해 조국을 사랑하는 조선의 여인상을 담아내는 영화 속 한 장면이다.

한복을 입고 조국을 위해 희생하는 이 비극주인공 조국은 사쿠라가 만개한 나라이며, 지화정에게 일본은 동경의 나라다. 정갈한 음식과 정종, 온천과 일본노래, 만주국 제국극장에서 들은 안익태 선생 만주환상곡은 온 몸으로 떨쳐 버릴 수 없는 기억이다. “일본어가 조선말로, 공부를 소홀하게 하지 말라”는 지화정의 당부는 한복과 대비되게 친일의 혼혈성이 강하게 투영 된다. 지화정은 역할과는 다르게 당대 최고 남자배우 양철(강석호 분)과 이혼한 사이로 관계구도를 이루고, 두 사람은 같은 영화에 주인공으로 출연하게 된다.

당시, 이혼이 사회적 분위기로 쉽지 않다는 점에서 이들을 이혼관계로 설정한다. 양철은 당대 가·무·악 삼박자를 갖춘 악극배우지만 노름과 주먹질을 일삼은 조선의 근성을 다 갖춘 인간이라서 이혼한 것이 지화정 이혼사유다. 두 사람의 이혼은 조국독립을 위해 달리던 선열들과 친일의 혼혈성으로 갈라진 시대의 균열을 투영한다. 조선의 대표적인 배우 여인상에서 민족성을 거세하고 희화화 된 이미지로 환치(換置)시켜 친일의 혼혈성을 투사해 ‘삼강오륜’을 져버린 조선의 대표적인 여배우로 그려진다.

연출은 지화정이 문하생 신소이(김정연 분)와 ‘화이브씩스’를 외치며 부채를 손에 쥐고, 품격 있는 춤 동작을 가르쳐주는 장면을 섞어 조선의 대표적인 여배우이미지를 조선의 강인한 여인상과는 대비되는 우스꽝스러움으로 묘사해 친일의 혼혈성에 조롱과 풍자의 날카로움으로 장면을 희극적으로 교차시킨다. 문하생 신소이가 어설프게 장고치는 장면에서는 우리가락의 훼손성을 들어냄으로서 혼혈된 이들에게 조선인이라는 이름표를 부착시키지 않는 설정을 구성한다.

친일의 혼혈성을 그린 전작 <만주전선>도 화자(청년·가네다) 의 할머니가 세 명이 된 ‘경주이씨 국당공파’ 라는 가상적인 전통성을 설정하고 있다. 3대에 걸친 가문의 조상부터 현재로 이어져 오는 인물까지 모조리 혼혈의 이름표를 붙이고 만주에서 잉태된 친일의 핏줄을 ‘경주이씨 국당공파’까지 형성시키는 이야기다. <해방의 서울>도 키무라키네마를 세운 아버지(이동학 분)과 사장(박상희분) 그리고 사장 아들 기무라 신고(김동찬 분)을 등장시켜 일본 제국주의 전쟁의 역사성을 3대에 걸쳐 투영시키고 조선인 혼혈의 가계도는 황당함으로 설정해 이루어진다.

극중 인물 양철이 지화정를 바라보는 시선은 ‘애 못 낳고 이혼당한 여인’이다. 대(代)를 이어 친일의 혼혈성에 가계도를 이룰 수 없는 구조다. 그러나 박근형의 특유의 기발함과 황당한 설정의 혼혈 섞기는 청춘배우 장강(최우정 분)과 기무라 신고(김동찬 분)을 통해서 교집합을 이루게 된다. <사쿠라는 피었는데> 출연하는 청춘배우 장강은 “카메라는 관객의 눈” 이라는 양철의 가르침과, “카메라렌즈와 싸우지 말고 렌즈를 사랑하라”는 지화정의 조언은 연기의 바이블이 됐다고 말한다.

두 사람을 예술적 부모님으로 모시고 싶어 하고 장강은 무조건적으로 “아버지! 어머니!”를 외쳐대며 혼혈의 가계구도는 황당함으로 빠져들고, 일본인 기무라 신고(김동찬 분)는 중학교 때부터 영화를 보며 지화정을 짝사랑 하게 됐다며 결혼 프로포즈를 한다. 지화정을 중심으로 한 혼혈의 가계도는 “날 알아주는 땅이 내 조국이고, 날 이해해주는 사람이 내 남편이며, 자신을 받아주는게 예술이죠. 저는 이제 당신 사람 이예요” 하며 기무라 신고를 남편으로 받아들임으로써 혼혈의 종착점을 이룬다.

허공을 찌르는 배우의 진실 “대사를 찌르고, 굴신, 항문의 힘!”


배우는 품격을 갖추고, 진실성으로 극중 인물로 동화되어야 한다. 배우는 주어진 역할의 내면성을 상대방과의 감정적 교류를 카메라 렌즈를 향해 표현하는 주체자지만 당대 대표적인 여배우 지화정과 문하생, 양철을 비롯한 등장인물에게 민족성과 진실성이 거세된 이미지를 투사(投射)함으로써 그들이 외쳐대는 품격과 진실성은 공허하고 우스꽝스러울 뿐이다. 카메라 렌즈는 민족의 시선이다.

카메라를 향해 감정의 진실성을 표현하는 당대 조선의 대표적인 배우들이 그 시선을 향한 진실성의 외침은 절규가 아닌 공허함이며, 상대배우에게 진실 된 감정의 전류가 혈전되어 있는 내면이다. 극중 인물 양철이 “찌르고, 항문의 힘! 굴신의 연기”를 외치며 진실된 연기를 쏟아내려고 안간힘을 쓰면서 말하는 대사 “내 조국 사쿠라를 지키지 못한다면” 반복적인 외침은 역사의 민낯이다.

마지막 장면을 촬영하려는데 비가 내린다. 촬영은 중단되고 천막안으로 모인 사람들은 일기예보를 듣기위해 라디오를 켜는데 천왕의 항복소식이 전파를 탄다. 미동도 하지 못하던 기무라 아버지(이동학 분)은 갑자기 휠체어에서 일어나 “조선인이 정신을 바로 차리고 찬란하고 위대했던 옛날의 조선 영광을 되찾으려면 백년 이상의 세월이 걸릴 것이며, 우리가 대포와 총보다 더 무서운 식민교육을 시켰기 때문에 무지한 조선인들은....(중략)”이라는 마지막 조선총독 아베 노부유키 고별사가 일본말로 흐르면서 천왕의 떨리는 소리와 오마주 된다.

아베노부스키와 조선에서 영화산업을 이끈 ‘기무라키네마’ 1세대 아버지(이동학 분)과 한 공간 두 이미지를 겹쳐 놓으므로 써 야스쿠니 신사에서 잠들어 있는 영혼의 A급 전범들을 깨운다. 마치 세계가 우려하고 있는 강성화 된 일본의 우경화와 제국주의 부활의 신호음은 ‘죽음의 역사’가 아니라 지금, 세계 국제관계 속에서 꿈틀거리며 ‘사쿠라가 만개한 세상의 기다림’으로 진행 될 수 있는 정치사(史)다.

박근형은 마지막 장면이 완성 되는 그날까지 죽도록 달릴 것 같다. 여전히 양철 악극배우의 소리(대사)가 상대방의 마음을 찌르지 못하는 것처럼 소리는 크고, 진실은 창경원 춘당지 연못 수면에 가라 앉아 있다. 시대의 역사에서 스타로 추앙받던 배우들은 미완의 영화 속 등장인물로 분해 감정의 ‘진실성’을 외친다. 혼혈의 소리는 허공을 향하고 창경원 춘당지 연못은 고요하다. 양철 악극배우(강석호 분)이 마지막 장면을 연습하며 상대배우에게 살아 있는 연기를 체득하기 위해 “내 조국의 사쿠라 하나 지키지 못한다면” 이라는 대사를 토해내면서 대사를 “찌르고, 굴신, 항문의 힘!” 을 외치며 온 힘을 다해 상대 배우 가슴을 향해 대사를 찌르며 쏟아내는 장면은 진실이 텅 비어있는 이들에게 조롱의 날로 시선을 보내고, 풍자로 도려낸다. 청산되지 않는 역사는 온전한 <해방의 서울>이 아니라는 박근형식 시선이 따갑다.

창경원 춘당지 연못의 역사적 공간에서 마지막 장면 <사쿠라는 피었는데>의 지화정이 연못 물속으로 빠져 죽은 장면의 미완은 역사적 진실과 오염된 혼혈사회가 정화 되었을 때 조선왕조 500년 역사를 품은 연못도 마지막 장면을 열어줄 것 같다. 또한 박근형도 마지막 장면이 완성되는 그날까지 죽도록 달릴 것 같다. 여전히 양철 악극배우의 소리가 상대방의 마음을 찌르지 못하는 것처럼. 소리는 크고, 진실은 창경원 춘당지 연못 수면에 가라 앉아 있다.

‘대사를 찌르고’ 받아내는 배우들 연기


박근형 연극은 배우들 활력이 중요하다. 배우들은 날것으로 무대를 돌진하고, 극적구조의 황당함은 날카로운 현실을 들어낸다. 능청스러움과 현존(現存)의 연기로 무장시켜 박근형 연극세계를 살아있게 만드는 배우들 존재는 크다. 박근형식의 날것 그대로 무대화 시키는 배우들의 연기, 황당한 장면설정도 활력 있는 즉흥성으로 능청스럽게 비틀고, 연기는 들숨과 날숨으로 경계를 왕복해야 하는 박근형 무대 화법을 대구시립극단 배우들이 고른 연기를 보였다.

특히 백은숙은 대구<해방의 서울>을 관객들이 끝까지 시선을 놓지 못하도록 능청스러움과 안정된 연기로 시선을 당겨갔다. 강석호(양철 악극배우)도 황당한 장면에도 찌르고, 굴신, 항문의 힘을 조이며 박근형식으로 장면을 잘 풀어냈고, 문하생 신소이(김정연 분)도 기대되는 연기를 보였다. 대구시립극단 훈련장을 맡고 있는 이동학(기무라 아버지)은 마지막 ‘아베 노부유키’ 실제 고별사를 일본말로 표현하면서 무게감 있는 연기로 존재감을 들어냈다.





대경대학교 연극영화과 교수(연극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