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누구?” “챔피언!”
17일 평창 패럴림픽 장애인 아이스하키 동메달 결정전을 짜릿한 승리로 장식한 대표팀의 기자회견은 시종 유쾌했다. 선수들은 휴대전화를 들고 축하 연락을 받았고, 경기에 대한 기사를 읽으며 즐거워했다. 주장 한민수는 기자회견석에 오르며 “이 자리에 설 줄이야, 알고 있었어?”라며 동료들에게 농담을 건넸다. 선수들은 “끝났다” “배고프다”며 후련한 표정을 지었다.
서광석 감독은 “많은 국민들이 파라아이스하키를 많이 응원해 주셨기 때문에 좋은 결과가 있었다고 생각한다”며 “17명 선수들이 너무 멋있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한민수는 “이러한 감격스런 순간에 이 자리에서 이렇게 인터뷰를 하게 돼 감사하고 무한한 영광”이라며 “한일전부터 시작해서 지금 동메달 결정전까지, 승패와 관계 없이 아낌 없는 응원과 관심 격려를 해 주셨기 때문에 이 자리에 섰다”고 말했다. 두 줄로 앉은 선수들은 발언마다 큰 박수를 보냈다.
서 감독은 “경기 전에 라커룸에서 미팅을 할 때 제가 메시지를 전달하다 울어 버렸다”고 말했다. 한일전을 앞두고 선수들에게 메시지를 보냈던 그는 동메달 결정전을 앞둔 오늘도 선수들 앞에서 편지를 읽다 눈물을 비쳤다고 한다. 그는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에도 눈물을 흘리지 않았는데, 머릿속에 시간과 훈련 과정이 스쳐 지나가며 너무 감격해 울었다”고 했다. 그는 “우리 17명 선수는 하나가 됐기 때문에 끝까지 믿고 격려할 뿐이었다”고 말했다.
결승골을 넣은 장동신은 “전혀 예상도 못했다, 떨린다”며 가슴을 어루만졌다. 그가 “정승환 선수가 잘 맞춰서 준 것 같다”며 어시스트한 정승환을 치켜세우자 선수들은 크게 웃었다. 장동신은 라커룸에서 “내가 하나 줬는데, 갚았다”고 정승환에게 농담을 했다 한다. 체코와의 연장전 초반 자신이 정승환에게 했던 어시스트를 되새긴 것이다.
이날 동메달을 결정지은 선수들은 빙판 위에서 울음을 터뜨리며 애국가를 불렀다. ‘애국가 세리머니’는 서 감독의 아이디어였다고 한다. 서 감독은 “저희 대한민국에서 하는 동계패럴림픽에서 우리의 무대로 마무리를 어떻게 할까 고민을 많이 했다”며 “금메달의 몇 배가 되는 동메달을 땄기 때문에 강릉 하키센터 중앙에서 애국가를 부르자고 했다”고 말했다.
이 경기를 끝으로 한민수 등 많은 ‘1세대’ 장애인 아이스하키 선수들은 은퇴한다. 이주승은 “고참 선수들을 통해 많이 배웠는데, 하키는 물론 인생을 살아가는 데에도 큰 도움이었다”며 “굉장히 마음이 아프지만 그만큼의 책임감을 갖고 젊은 선수들이 형들 몫을 하겠다”고 말했다. 한민수는 “마음 편히 떠날 수 있게 해 준 동생들에게 감사를 드린다”고 했다.
유만균은 기자회견장에서 약간의 눈물을 내비쳤다. 그는 대표팀의 주전 골리지만 이날 경기에는 나서지 못했다. 유만균은 “선수이다 보니 끝에는 시합도 뛰고 싶었고, 또, 재웅이(이재웅)가 걱정도 됐다”고 말했다. 그는 “대표팀에서 골리로 앉아 있으면서 사실은 이탈리아와 악연이 많았다”며 “감독님께서 잘 선택해 주셔서 악연을 제 후배가 멋지게 끊어 줘서 좋은 결과가 있었는데, 선수들이 자랑스럽다”고 했다.
‘빙판 위의 메시’ 정승환은 “17명 선수에게 오늘은 정말 평생 기억될 좋은 날”이라며 장비매니저와 멘털코치 등 스태프의 이름을 하나하나 불렀다. 그는 “사랑하는 어머니께 먼저 메달을 걸어 드리고 싶고, 지금 고인이시지만 저희 아버지께도 (메달을) 보여드리고 싶다. 그리고 난 다음에 여자친구에게 프러포즈하고 싶다”고 말했다.
기자회견이 끝나고 선수단의 기념촬영 시간이 되자 주장 한민수가 “파이팅 대신 다른 구호를 하자”고 제안했다. 한민수가 “우리가 누구?”라고 선창하자 모든 선수가 “챔피언!”이라고 답했다. 구호는 한동안 반복됐다.
강릉=이경원 기자 neosar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