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범죄자 ‘신상등록 명령서’ 옛 주소지로 보낸 ‘무책임 법원’

입력 2018-03-14 19:51

성범죄로 유죄를 선고받은 남성이 법원으로부터 성범죄자 신상정보를 등록해야 한다는 고지를 제때 받지 못해 또다시 처벌될 상황에 놓였다. 해당 남성은 법원 선고 전 이사를 마치고 전입신고까지 끝냈지만 법원은 과거 주소지로 명령서를 보냈다.

서울 용산경찰서는 강제추행으로 유죄 판결을 받았던 대학생 A씨(30)에 대해 성범죄자 신상정보를 제출하지 않은 혐의(성폭력범죄처벌특례법 위반)로 입건해 조사 중이라고 14일 밝혔다. A씨는 지난해 6월 말 학과행사 후 열린 회식 자리에서 만취해 여자 후배 B씨의 어깨와 허리 등을 만졌다. 서울북부지법은 9월 A씨에게 벌금 100만원과 재범 방지 프로그램 40시간을 이수하라는 약식 명령을 내렸다.

법원은 지난해 10월 A씨에게 판결이 확정됐다는 사실과 함께 ‘성범죄자 알림e’에 주소, 직업 등 신상정보를 등록하라는 우편을 보냈다. A씨는 우편물을 받지 못해 등록기한을 넘겼다. 성범죄자는 판결 확정 후 30일 내 신상정보를 등록해야 하고 이를 어기면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진다. A씨는 1년도 안 돼 또다시 범법자가 될 위기에 처했다.

법원 관계자는 “10월에 신상정보 등록의무가 포함된 약식명령을 보냈지만 A씨의 집 문이 닫혀 있고 사람이 없어 공시송달된 것으로 처리했다”고 설명했다. 공시송달은 피고인의 주소나 근무지 등 송달할 장소를 알 수 없을 경우 법원 게시판이나 관보·공보 등에 게재해 송달받은 것으로 간주하는 절차다.

하지만 A씨는 “약식 선고 전 이사를 했고 전입신고까지 마친 상태였는데 법원이 잘못된 주소로 명령서를 보냈다”며 “일부러 등록을 안 한 것도 아닌데 억울하다”고 했다. 법원은 “내용이 담긴 우편을 보냈지만 당사자가 받지 못했다”며 고지 의무를 다했다는 입장이다.

공시송달 판례는 엇갈렸다. 대법원은 2014년 비슷한 사례에서 “판결문에 신상정보 등록 의무를 기재한 만큼 고지서가 피고인에게 송달되지 않았다는 등으로 제출 의무를 인식하지 못했다는 것은 (정상참작의) 정당한 사유가 될 수 없다”고 했다. 반면 2011년 공소장이 송달되지 못한 사례에 대해서는 “공시송달은 피고인의 주거, 사무소, 현재(주거)지를 알 수 없는 때에 한해야 한다”며 “기록상 피고인의 전화번호 등이 있는 경우 연락을 해 장소를 확인해 보는 등의 시도를 해야 한다”고 판시했다.

방극렬 기자 extreme@kmib.co.kr 그래픽=공희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