홀로 싸웠던 故 장자연, 재수사 청원 8만8천명 참여

입력 2018-03-14 16:08 수정 2018-03-14 16:47

배우 고(故) 장자연 사건에 대한 재수사를 촉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지난달 26일 올라온 “고 장자연의 한 맺힌 죽음의 진실을 밝혀주세요”라는 제목의 청원에 14일 오후 8만8121명이 참여했다.

청원인은 “사회적 영향력, 금권 기득권이 힘없고 빽없는 사람의 생을 꽃다운 나이에 마감하게 하고도 버젓이 잘 살아가는 사회, 이런 사회가 문명 국가라 할 수 있느냐”며 “어디에선가 또 다른 장자연이 고통을 받지 않는다고 이야기할 수 있을까. 우리 일상에 잔존하는 모든 적폐는 청산돼야 한다”고 밝혔다.

청원 참여인원이 20만명을 넘을 경우 청와대는 공식답변을 내놔야 한다. 이 청원의 마감은 오는 28일로 14일 남았다.


◆ 가해자로 지목된 10명 모두 무혐의

2009년 3월 7일 장자연(당시 30세)씨가 자택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신인배우로 막 이름을 알리던 그가 극단적인 선택을 하게 된 이유를 두고 여러 의혹이 제기됐다.

그의 매니저였던 A씨가 장씨가 생전에 작성한 이른바 ‘장자연 문건’을 유족들에게 알리면서 장씨가 술접대와 성상납에 동원됐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장자연 문건’이 공개되면서 그동안 설로만 전해졌던 연예계 성상납 실체가 드러났고, 이에 가해자들을 처벌해여 한다는 목소리가 거세게 일었다.

장씨가 생전에 남긴 문건에 따르면 그는 연예기획사, 대기업·금융업 종사자, 언론사 관계자 등 31명에게 100여 차례 이상 술접대와 성상납을 했다. 장씨는 유서에서 가해자로 추정되는 이들의 소속과 직함을 구체적으로 적었다.

하지만 가해자로 지목된 이들 가운데 성상납으로 처벌 받은 사람은 아무도 없다. 2009년 8월 19일 검찰은 장씨에게 술접대 등을 강요하고 이를 방조한 혐의로 수사를 받은 언론사 대표와 금융관계자, 드라마 감독 등 유력인사 모두 10명에 대해 증거 부족 등의 이유로 무혐의 처리했다.

결국 장자연 사건은 소속사 전 대표 B씨와 전 매니저 A씨 두 명만 기소하는 선에서 마무리됐다. 장자연씨를 폭행 및 협박한 혐의로 기소된 B 전 대표는 2011년 11월 항소심에서 폭행 혐의만 유죄로 인정돼 징역 4월에 집행유예 1년을 선고받았다. B씨의 명예를 훼손했다는 혐의로 기소된 전 매니저 A씨는 모욕죄로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 사회봉사 160시간을 명령 받았다.


◆ 법원 “‘장자연 문건'은 장자연의 필적”

한편 A씨가 이 문건을 이용해 B씨를 협박하려 했다는 문제제기가 나오면서 문건에 대한 진위여부가 논란이 됐다. 하지만 법원은 ‘장자연 문건’ 조작 여부에 대해 '조작이 아니다'라고 판단했다.

‘장자연 문건’에는 장씨가 유력 인사들에게 성상납을 했고 이를 주도한 인물이 당시 소속사 대표였던 B씨라는 내용이 담겨있다. 이에 B씨는 “A씨가 ‘장자연 문건’을 위조해 명예를 훼손했고, 배우 이미숙과 송선미가 전속계약과 관련한 갈등을 이유로 이 문건 위조에 개입했다"며 2012년 10월 소를 제기했다.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25부(부장판사 장준현)는 2013년 11월 20일 B씨가 전 매니저 A씨와 배우 이씨와 ·송씨 등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에서 원고 일부승소 판결했다.

재판부는 "'장자연 문건'이 장자연의 필적일 가능성이 높다는 국립과학수사연구원 감정결과 등을 종합하면 A씨가 문건을 위조했다고 단정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다만 "A씨가 '장자연의 죽음에 책임을 져야 할 '공공의 적'이라고 B씨를 공개적으로 표현한 행위는 불법행위가 분명하다"며 A씨에 대해 700만원의 손해배상 책임을 인정했다.

사진=MBC 캡처

"나는 힘 없는 연예인" 장자연 사건 재수사 촉구

지난 7일 고 장자연씨의 9주기를 맞아 여러 언론이 이 사건을 재조명했다. 성폭력 피해자들이 피해 사실을 용기내 고발하는 ‘미투 운동’이 사회 곳곳으로 확산하면서 장자연 사건에 대한 재수사를 촉구하는 여론도 거세지고 있다.

하지만 최근 법무부 검찰과거사위원회가 선정한 1차 조사 대상에선 장자연 사건이 제외됐다. 이에 검찰이 장자연 사건에 대한 재수사 의지가 부족한 것이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이에 대해 검찰과거사위원회 관계자는 “장자연 사건을 조사 대상에서 제외시킨 것이 아니다”라며 “내부 회의를 통해 조사 대상이 선정된다. 장자연 사건도 다시 조사 대상에 오를 수 있다”고 설명했다.

다만 회의 과정에서 장자연 사건이 거론됐는지, 왜 1차 조사 대상에서 빠졌는지에 대해선 “말할 수 없다”고 짧게 답했다.

최민우 기자 cmwoo11@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