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기 초다. 부모는 아이가 새로운 학년, 새로운 학교에 잘 적응을 하고 있는 지 궁금하다. 아이와 대화를 통해 알아가야 할 텐데 대화가 쉽지 않다. 더구나 아이의 발달에 대한 이해와 대화 요령이 없다면 아이의 말문을 막아버리게 된다.
초등학교에 입학한 K는 외동 아들이다. 수줍음이 많고 새로운 환경에 대한 적응이 느린 편이라 엄마의 걱정이 많다. ‘학교에서 말은 제대로 하는지 소변이 마려우면 의사표시를 하는지’ ‘참다가 혹시 소변 실수를 하는 것은 아닌지’ ‘친구들에게 놀림을 받거나 치이는 것은 아닌지’ 등등.
하지만 엄마의 욕구와는 달리 아이는 밖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통 말을 하지 않는다. 엄마의 질문에 그냥 “응 친구와 사이좋게 지냈어” “선생님 말씀 잘 들었어” “응 재미 있었어”등의 영혼 없는 답변만 돌아온다. 유치원 때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다가 유치원에서 있었던 일은 다른 사람을 통해 들은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아이들의 입장에서 하는 말을 듣다보면 이 또한 이해가 된다. “엄마는 매일 매일 학교 마치고 가면 꼬치꼬치 캐물어요.” “그러고는 잘못한 일이 있거나 친구와 싸웠다고 하면 친구 편만 들고 저를 야단치니 말하고 싶지 않아요” 야단 맞을 걸 뻔히 알면서 스스로 고백하는 용기(?)있는 아이는 그리 많지 않다. 또 엄마의 질문 공세가 부담스럽고 엄마가 자신을 신뢰하지 못하다고 느낄 수 있다.
그러니 대화를 하려면 우선 일방적인 질문 보다는 오고 가는 쌍방 통행의 ‘대화’가 되어야 한다. 엄마, 아빠도 하루 있었던 일을 이야기하고 주고 받아야 한다. 질문의 방법도 바꾸어 보자. 막연하게 “오늘 학교에서 어땠어?” 하기 보다는 “반에서 제일 재미있는 친구가 누구야?” “반에서 도와주고 싶은 친구가 있니? 도와 준적도 있니?” “짝이 되고 싶은 친구가 있니?“ “선생님이랑 수업한 것 중에 뭐가 재미있는 게 있었어?” “하루 중에 제일 지루 할 때가 언제였어?” 등등 구체적인 질문을 해주면 말이 시작된다. 곁들여서 자신의 얘기나 힘들었던 이야기들도 맥락에서 기억이 나면서 튀어나온다.
어린 아이들은 어른에 비해 여러 가지 면에서 미숙하다. 대화에 필요한 능력도 마찬가지다. 언어적인 능력 특히 감정을 표현하는 언어의 발달이 미숙하다. 특히 가족이 평소 감정을 억압하고 억제하며 감정 표현이 적은 우리나라 아이들은 특히 더 심하다. 그래서 아이들은 학교에서 일이 있으면 말로 표현하기 보다 이유없이 짜증을 내고 심통을 부리고, 눈물만 뚝뚝 흘리거나 괜한 동생만 괴롭히고 때리곤 한다. 아이를 키워본 사람이면 누구나 경험했을 법한 상황이다.
또 기억력의 문제다. 유치원, 혹은 학교에서 있었던 일을 이야기하려면 우선 그 사건을 잘 기억해야 한다. 그 일의 순서에 대해서도 기억해야 한다. 그래야 이야기 형태로 말할 수 있다. 하지만 10살 이전의 아이들은 발달 단계상 이것이 어렵다. “그 일 전에 무슨 일이 었었는데? 그럼 그전에는? 그 다음엔 어떻게 되었어? 그때 누구와 있었는데?” 하고 부드럽게 물어봐 기억을 되살리게 해 주어야 이야기가 연결 될 수 있다. 그러지 않고 “왜 그렇게 답답해? 제대로 말을 해봐, 왜 말을 못하니?” “그렇게 가운데 토막만 얘기하면 알아들을 수가 없잖아!”라며 다그친다면 아이는 더 기억을 못하고 차츰 말문을 닫아 버릴 거다. 물론 아이가 학교 다녀와서 평소와 다른 반응을 보이면 부모 입장에서는 걱정도 되고 조급해지겠지만 불안한 마음을 자제하고 차분히 아이의 마음을 읽어주며 적절한 질문을 해 이야기를 기억해 내게 도와주어야 한다.
이호분(연세누리 정신과 원장, 소아청소년 정신과 전문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