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용비리 부메랑 최흥식 원장, 추천했지만 부정 없었다?

입력 2018-03-12 07:31

금융회사 채용비리 검사를 진두지휘했던 최흥식 금융감독원장이 ‘부메랑’을 맞았다. 최 원장은 하나금융지주 사장 시절 KEB하나은행 채용에 관여했다는 의혹을 받자 하나금융 측에 “증거를 제출해 달라”며 강하게 대응했다. 하나금융은 “자체 조사 결과 최 원장이 추천한 지원자에 대한 점수 조작은 없었다”고 답했다. 감독기관 수장으로서 최 원장의 신뢰도 타격이 불가피하게 됐다.

금감원은 하나금융 측에 2013년 당시 하나금융지주 사장이던 최 원장이 대학 동기 자녀의 이름을 KEB하나은행 인사담당 임원에게 건네는 식으로 채용에 개입했다는 증거를 밝혀 달라고 11일 요청했다. 점수나 통과 기준을 조작한 행위가 있다면 이를 공개하라는 취지다. 해당 지원자는 최종 합격한 것으로 전해졌다.

수장이 채용비리 의혹에 연루되자 금감원은 휴일임에도 임원급 대책회의를 갖고 논란 잠재우기에 나섰다. 금감원 측은 “최 원장이 은행에 이름을 전달했던 것은 당시 그룹 임원들로부터 공개적으로 받았던 ‘우수인재 추천전형’일 뿐”이라며 “이를 ‘비리’로 규정하려면 점수나 통과 기준 조작 행위가 있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에 하나금융 측은 ‘불법행위는 없었다’는 입장을 내놓았다. 하나금융 관계자는 “이틀 동안 당시 인사 담당자들을 면담 조사한 결과 최 원장이 지주 사장으로 있을 때 대학 동기의 자녀를 추천한 것과 인사 담당자에게 합격 여부를 알려 달라고 말한 내용은 사실로 확인됐다”고 전했다. 이 과정에서 부당 개입이나 점수 조작 등 불법행위는 없었다고 강조했다. 다만 하나금융이 내놓은 답변은 내부 전산망 기록이나 인사자료를 종합 검토한 결과는 아니다. 하나금융 측은 당시 채용 담당 임원과 인사팀원을 조사하는 데 그쳤기 때문에 한계가 있다는 점도 분명히 했다.

이에 따라 채용 당시 심사위원들이 점수를 매겼던 전산망 기록을 확인하기 전까지는 점수나 통과 기준 조작 여부를 판가름할 수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현재 하나금융의 채용 관련 전산망은 검찰의 채용비리 조사 때문에 접근이 불가능한 상태다. 정확한 전산망 확인 없이는 ‘부탁은 했지만 부정은 없었다’는 최 원장의 해명에 무게가 실리지 않는다. 채용비리 문제로 행장이 교체된 우리은행이나 현재 검찰 수사를 받고 있는 KB국민은행, KEB하나은행 등도 비슷한 형태의 해명으로 일관하고 있다.

또한 최 원장의 말대로 친구 자녀를 ‘추천’만 했더라도 신뢰성과 도덕성에 흠집이 가는 걸 피하기 어렵다. 지난해와 올해 초 우리은행과 KEB하나은행은 인사 청탁 명단이 발견됐다는 사실만으로 국민적 공분을 샀다. 지난해 김용환 NH농협금융지주 회장도 금감원 신입직원 채용 당시 지인 아들의 합격 여부를 문의했다는 것만으로 검찰 수사를 받았었다. 무혐의 처분을 받았지만 당시 채용을 담당했던 금감원 인사 담당자는 구속됐다.

한편 이번 채용비리 논란 이면에 최 원장과 김정태 하나금융 회장의 오래된 악연이 자리 잡고 있다는 뒷말도 나온다. 최 원장은 지난해 9월 취임한 뒤 잇따라 ‘친정’과 갈등을 빚어왔다. 금감원은 김정태 회장의 3연임과 관련해 하나금융에 차기 회장 후보 선임 일정을 연기하라고 요청했지만 하나금융은 강행했다. 하나금융 사내·사외이사 교체 문제를 놓고도 잡음이 일었다.

안규영 우성규 기자 kyu@kmib.co.kr, 그래픽=전진이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