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법지대’ 신상털기… 확산되는 미투 2차 가해

입력 2018-03-12 06:55

미투 운동 확산과 함께 피해 여성이나 가족 등을 향한 2차 가해의 강도 역시 높아지고 있다. 폭로자의 사진과 나이, 소속 등 신상을 터는 글들이 게재되면 외모비하나 ‘카더라’ 식의 정보가 더해진다.

안희정(사진) 전 충남지사의 성폭행 의혹을 폭로한 김지은씨도 2차 피해에 따른 극심한 고통을 호소하고 나섰다. 김씨의 변호인은 “지금도 피해자에 대한 악의적 소문과 허위사실 및 사적 정보가 유포되고 있다”며 검찰 수사를 촉구했다.

실제 각종 온라인 커뮤니티와 블로그 등에는 11일 김씨의 학력·나이·결혼여부 등 신상정보와 ‘불륜설’ ‘성폭행을 가장한 공작설’부터 ‘김씨의 아버지가 과거 정치활동을 했다’ 등의 루머가 퍼지고 있다.

간과할 수 없는 것은 가해자 가족 역시 신상 털기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점이다. 일부 네티즌들은 배우 고 조민기씨 등 미투 운동을 통해 가해자로 지목된 유명인들의 아내와 자녀의 SNS 등을 찾아 악성 댓글을 남겼다. 한 네티즌은 조씨의 딸 사진을 캡처해 ‘조민기 딸 근황’이란 제목으로 퍼뜨리기도 했다.

경찰은 지난 8일 온라인상의 2차 피해를 막기 위해 미투 피해자에 대한 거짓 정보를 발견하면 즉각 삭제 조치하겠다고 밝혔다. 피해자를 모욕하고, 명예를 훼손할 만한 심각한 발언을 한 경우 IP 주소를 추적해 검거하고 엄하게 처벌할 방침이다. 경찰청과 지방청의 전담 모니터 요원 200여명을 투입했다.

하지만 경찰의 조치는 ‘신상 털기’ 자체를 막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무엇보다 신상 털기를 막을 명확한 법률이 없는 상황이다.

개인정보보호법은 당사자의 동의 없이 개인의 주민등록번호나 성명, 사진 및 영상 등을 수집하거나 제3자에게 제공하는 것을 금지하고 있다. 위반 시 5년 이하의 징역이나 50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하지만 이는 정보를 처리하는 사람에게 국한된다는 게 경찰의 설명이다.

경찰청 사이버수사과 관계자는 “대학교 입학관리본부나 기업 인사팀 관계자 등 타인의 신상정보를 직접 처리하는 사람이 상대의 동의 없이 유출했을 경우 처벌이 가능하다”며 “그러나 정보 처리와 상관없는 사람이 피해자의 신상을 온라인에 게재했더라도 ‘악의가 없었다’고 하면 법을 적용하기 힘들다”고 말했다.

정보통신망법의 경우 허위 사실을 유포하고 그로 인해 사회적 평가를 저해하려는 목적이 있어야만 처벌이 가능하다. 단순한 신상정보 유포에는 정통망법이 적용되지 않는다.

서울대 사회학과 서이종 교수는 “특정 사건 관련 피해자 또는 가해자 가족의 신상 털기가 단순 호기심을 넘어 ‘정의 구현’이라는 미명 아래 시작되는 경우가 있는데 이는 개인정보와 관련된 근거 없는 소문을 양산하며 피해를 증폭시킨다”며 “익명에 기대어 남의 사생활을 폭로하는 행위를 지양하는 문화가 시민사회에 필요하다”고 말했다.

노출된 신상을 삭제하려면 개인적으로 방송통신심의위원회에 신고해야 한다. 법무법인 한올의 백혜랑 변호사는 “호기심이나 재미로 신상을 유포했을 경우에도 처벌이 가능하고, 정보 통신 서비스 제공자들에게는 유포된 개인 신상 정보를 강제로 삭제케 하는 등의 제도 보완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정통망법 위반 등 혐의는 피해자가 원치 않으면 처벌할 수 없는 ‘반의사불벌죄’다. 백 변호사는 “셀 수 없는 사람들이 피해자에 대한 허위 사실을 유포시켰을 경우 일일이 고소하기도 어려운 상황”이라며 “이에 대한 재고(再考) 역시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한편 김씨와 같은 날 검찰 조사를 받은 안 전 지사는 김씨와 성관계를 맺은 사실은 인정했지만 위력이나 위계에 의한 강제성이 있는 성폭행 범죄는 부인한 것으로 알려졌다. 반면 김씨는 “수행비서로서 도지사의 뜻을 적극적으로 반대할 수 없어 위력에 의한 성폭력 피해를 입었다”는 취지의 진술을 한 것으로 전해졌다. 서울 서부지검은 조만간 안 전 지사를 재소환할 예정이다.

안 전 지사에게 성폭행 당했다고 폭로한 다른 여성의 고소도 있을 전망이다. 추가 폭로자의 법적 대응을 돕고 있는 전국성폭력상담소협의회 관계자는 “업무상 위력에 의한 추행과 위계 등 간음 혐의로 이번 주 중 안 전 지사를 서부지검에 고소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사야 기자 Isaiah@kmib.co.kr, 사진=윤성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