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명의 목숨을 앗아간 지난해 제천 화재 참사에서 소방관들의 화재 진압을 어렵게 했던 원인 중 하나로 불법 주·정차가 꼽혔다. 주·정차된 차량들 때문에 소방차 진입이 어려워 화재 진압 골든 타임을 놓쳤다는 보도가 여럿 나오자 한때 시민들 사이에서 자성의 목소리가 나오기도 했다. 오는 6월부터 시행되는 개정 소방기본법에 소방관이 소방 활동에 방해되는 불법 주·정차 차량을 제거해도 차주가 보상받을 수 없다는 내용이 새로 들어간 것은 이런 시류를 반영한 것이다.
그러나 도로뿐 아니라 소방서 주변 불법 주·정차도 여전하다는 불만의 목소리가 나온다. 119소방안전복지사업단은 9일 소셜 미디어를 통해 “민원인이 주차장인 줄 알고 소방차 차고에 주차를 해놨다”며 한 장의 사진을 올렸다. 해당 사진은 최근 충남의 한 소방서에서 찍힌 것으로 소방차 주차구역에 주차돼 있다.
119소방안전복지사업단의 최인창 단장은 인터뷰에서 “현장에 출동을 나갔다 온 소방차는 소방 및 구급 장비가 신속하게 재정비돼야 다음 출동을 나갈 수 있다”며 “이번 경우처럼 다른 차량이 소방차 주차구역에 주차를 한다면 소방차가 출동 준비를 할 수 없어 다음 출동에 문제가 생긴다”고 토로했다.
현행 소방기본법에 따르면 소방차 전용구역에 일반인이 주차했을 경우 100만원 이하의 과태료를 내야 한다. 소방차의 진로 및 출동을 방해할 경우 5000만원 이하의 벌금이나 3년 이하의 징역 등 법적 처벌을 받을 수 있다.
그러나 최 단장은 불법 주·정차하는 차량의 차주에게 관련 법규를 적용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려운 일이라고 지적했다. 소방서를 이용하는 민원인들이 대부분 소방관들과 매일 마주치는 지역민들이다보니 신고를 하거나 과태료를 물리면 껄끄러운 사이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최 단장은 “(소방서에 주차하는 시민들이) 대부분 거의 매일 보는 지역민들이기 때문에 민원에 시달리지 않기 위해 ‘차를 빼달라’고 얘기만 할 뿐 강하게 대처하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지난 1월1일에는 강릉소방서 경포119센터 앞에 불법으로 주차된 수십 대의 차량들이 인터넷에 공개돼 여론의 뭇매를 맞았다. 차주들은 경포대에서 새해 맞이 해돋이를 보기 위해 인근의 강릉소방서 앞에 주차를 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해 12월 21일 충청북도 제천에서 대형 화재가 발생한 지 열흘 만이었다. 이 때문에 해맞이 행사 안전지원 등으로 출동했던 구조차와 펌프차가 차고로 복귀하지 못한 채 40분 넘게 외부에서 대기해야 했다. 당시 현장에서 근무했던 소방관들 역시 차주들에게 일일이 전화를 걸어 차량 이동을 요청했을 뿐 과태료를 부과하진 않았다.
소방당국은 오는 6월 개정되는 소방기본법 개정안에 긴급출동 차량의 통행 확보를 위해 주차 차량을 치울 때 손실 및 보상 규정을 새로 넣었다. 이에 따르면 긴급출동 소방차의 통행이나 소방 활동에 방해되는 주정차 차량과 물건를 소방관이 제거할 경우 소방청장이나 시·도지사는 반드시 손실보상심의위원회 심사·의결에 따라 정당한 보상을 해야 한다. 다만 불법 주·정차 차량일 경우 보상을 받을 수 없다. 적극적인 제거·이동 과정에서 차량이 파손돼도 주·정차 금지 구역일 경우 보상을 받지 못한다는 뜻이다. 소방청 관계자는 개정 소방기본법을 소개하며 “제거 과정에서 발생하는 파손이 용인되는지는 법제처 해석이나 대법원 판례를 봐야겠지만 집행기관 입장에서는 가능한 것으로 보고 적극 대응할 방침”이라고 설명했다.
우승원 인턴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