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희정·정봉주·민병두… ‘미투 화살’ 왜 민주당을 향하나

입력 2018-03-11 09:58

성폭력 피해를 폭로하는 ‘미투(#MeToo)' 운동의 화살이 연일 더불어민주당을 향하고 있다. 검찰에서 시작돼 문화예술계를 초토화한 물결은 각계로 확산되면 정치권에도 상륙했다. 유력 정치인에게 성폭행 성추행 성희롱 피해를 입었다는 주장이 쏟아져 나온다. 그런데 대부분 여권 인사들이 거명되고 있다.

안희정 전 충남지사에 이어 서울시장에 출마하려던 정봉주 전 의원이 지목됐고, 충남지사 출마를 준비 중인 박수현 전 청와대 대변인도 관련 의혹에 시달리고 있다. 10일에는 현역 민병두 민주당 의원의 이름이 나왔다. 10년 전 노래방에서 그에게 성추행을 당했다는 여성의 폭로가 나오자 민 의원은 곧바로 의원직을 사퇴하겠다고 밝혔다.

민주당은 충격에 휩싸였다. 외교안보 분야는 남북정상회담에 이어 북미정상회담까지 합의되면서 ‘더 이상 좋을 수 없을 만큼’ 순항 중이다. 4월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의 정상회담, 5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의 정상회담이 성공적으로 치러지면 북핵 위기는 상당부분 해소될 수 있다. 이는 6월 지방선거에 엄청난 호재로 작용할 게 분명하다.

민주당은 이렇게 좋은 기회를 맞이하고도 잇따라 성추문에 휘말리며 스스로 발목을 잡는 형국이 됐다. ‘미투 가해자’로 지목된 민주당 인사들은 하나 같이 중량급이다. 최근 폭로된 인사 중에는 대권주자 1명(안희정)과 광역단체장 후보군 3명(정봉주 박수현 민병두)이 포함돼 있다. 그중 2명은 현역 지사와 현역 의원이었다.

민주당 관계자는 “문재인 정권의 높은 지지도와 안보 분야의 초대형 호재를 감안하면 이번 지방선거는 당연히 압승을 예상해야 하는 상황인데, 그럴 수 없게 됐다. 미투 파문이 심상치 않다. 특히 안희정 전 지사의 성폭행 사태가 너무 크다”고 말했다.

과거에도 정치권에선 성추문이 종종 불거졌다. 현 야당인 자유한국당은 여당이던 새누리당 시절 민주당으로부터 ‘성누리당’이란 공격을 받곤 했다. 박희태 전 국회의장은 2014년 골프장에서 캐디를 성추행해 기소됐고 대법원에서 징역 6개월에 집행유예 1년을 선고받았다. 2015년에는 심학봉 전 의원이 성폭행 혐의로 의원직을 사퇴했다.

더 거슬러 올라가면 최연희 전 의원의 여기자 성추행 사건, A의원의 친족 성폭행 의혹 등이 파문을 일으켰다. 이런 일이 터질 때마다 민주당은 강도 높은 공세를 퍼부으며 ‘도덕적 우위’를 과시하곤 했는데, 이번엔 공수가 바뀌었다. 한국당은 연일 ‘미투 사태’를 전면에 내세워 민주당을 압박하고 있다. 박근혜 정권의 국정농단 뇌물 사건으로 도덕성 면에선 할 말이 없었던 한국당이 거꾸로 민주당을 비도덕적인 세력으로 몰아가고 있는 형국이다.

이런 상황이 벌어지면 늘 그렇듯이 ‘음모론’은 이번에도 고개를 들었다. 각종 찌라시에 ‘기획설’ 등을 제기하는 주장이 심심치 않게 등장한다. 방송 진행자 김어준씨는 진보 진영을 향한 공작’을 언급해 구설에 오르기도 했다. 그는 지난달 24일 팟캐스트 ‘김어준의 다스뵈이다'에서 "미투 운동이 진보 지지자들을 분열시키는 공작에 이용될 수 있다"고 했다.

이어 9일 공개된 팟캐스트에서는 "최근의 사건(미투)들과 관련해 몇 가지는 말해둬야겠다. 제가 공작을 경고했잖아요. 그 이유는 일단 미투를 공작으로 이용하고 싶은 자들이 분명히 있기 때문"이라고 거듭 주장했다. 그는 "젠더 이슈는 복잡하고 어렵다. 그래서 공작하는 사람들이 끼면 본질이 사라지고 공작만 남는다. 공작은 막고, 이건 사회운동으로 기회를 살리는 모두의 지혜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현 시점에서 정치권의 미투 폭로가 민주당에 집중되고 있는 건 분명한 현상이 됐다. 하지만 이를 ‘배후’나 ‘공작’의 결과물로 볼 만한 근거는 어디에도 없다. 가장 큰 원인은 민주당 인사들이 그동안 잘못된 행동을 해온 데 있다. 여권의 한 인사는 “우리 사회가 안고 있던 거대한 모순 하나가 수면 위로 올라와 큰 흐름이 바뀌고 있는 상황”이라며 “이건 누가 개입해 만들어 내거나 브레이크를 걸 수 있는 차원의 문제가 아니다”라고 했다.

태원준 기자 wjta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