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사단, 北에서 KBS, CNN 등 시청” 청와대가 전한 ‘방북’ 후일담

입력 2018-03-08 17:08
이하 뉴시스

대북 특사단이 방북 기간에 고방산초대소에 묵었던 소감을 전했다. 특사단은 숙소에서 국내 방송 및 해외 채널이 나오는 TV를 시청하고, 한국 포털사이트에 자유롭게 접속해 국내 뉴스를 봤다고 한다.

청와대는 8일 오후 2시30분 춘추관에서 특사단이 밝힌 방북 뒷이야기를 전했다. 특사단은 1박2일의 방북 기간에 북측에서 제공한 고방산초대소에 묵었다. 이 초대소는 그동안 우리 측 인사들에게 거의 공개된 적이 없던 곳으로 평양시 삼석구역에 위치한 고급 휴양시설이다.

청와대 관계자는 “특사단이 건물 내부를 자유롭게 돌아다녔다”며 “1층에 커피 마시러 가거나 울타리 안을 산책하는 등 북측의 간섭이 전혀 없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초대소에 필요한 게 잘 정리돼 있었다”며 “숙소 TV에서 KBS, MBC, YTN 등 국내 방송은 물론이고 미국 CNN과 같은 전 세계 수십 개 채널이 방영됐다. 국내 포털사이트도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특사단은 북한에 머무는 동안에도 인터넷으로 국내 뉴스를 봤다고 한다.

특사단이 경호는 국빈급이었다. 과거 방북 인사를 각각 한 명씩 맡아 감시하는 일명 ‘마크맨’이 전혀 없었다. 특사단을 보호하면서 부담은 주지 않는 방식이었다. 관계자에 따르면 특사단은 북한의 환대를 “화려하기보단 굉장히 세심하고 정성 어린 대접”이라고 평가했다.

청와대는 특사단이 ‘정성 어린 대접’의 예로 ‘랭면(냉면)’과 ‘온반(고깃국으로 만든 국밥)’을 꼽았다고 소개했다. 특사단은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과 4시간12분 동안 접견 및 만찬을 가졌다. 만찬 음식으로 북한에서 겨울에 즐겨 먹는 전통 음식인 온반이 나왔다. 온반은 지난달 북한 고위급 대표단이 한국을 방문했을 때 우리 측 인사와 나눈 대화에서 언급된 음식이다. 당시 우리 측 관계자 중 한 명이 “평양은 냉면이 최고라던데 맛보고 싶다”는 말을 했다고 한다. 냉면은 방북 둘째 날 북한 유명 음식점인 ‘옥류관’에서 먹었다. 고위급 대표단으로 한국에 왔던 김영철 노동당 중앙위 부위원장이 “원래 평양 인민들은 랭면을 두 그릇씩 먹는다”며 음식을 더 권하기도 했다.

특사단을 환영하는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과 부인 리설주 여사.

특사단은 5일 평양 도착 이후 약 3시간 만에 김 위원장을 만났다. 숙소로 이동하며 특사단 대부분이 당일 김 위원장과 회담이 성사되기 힘들 것으로 예상했다고 한다. 상당한 신경전과 줄다리기 후 만남이 이뤄졌던 선례 때문이었다. 그런데 숙소에 도착해 짐을 풀자마자 김 부위원장이 특사단을 찾아왔다. 김 부위원장은 자리에 앉자마자 “바로 김 위원장을 만나게 될 것”이라며 접견 및 만찬 일정을 알렸다.

접견 및 만찬 장소는 김 위원장의 집무실이 있는 노동당 본부였다. 북측이 특사단에 초대소부터 본부까지 리무진 차량을 제공했다. 먼저 나와 기다리고 있던 김 위원장과 여동생 김여정 노동당 중앙위 제1부부장이 건물 현관에서 특사단을 맞이했다. 김 위원장은 접견 내내 배려있는 모습을 보였다.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이 마주 앉아있던 테이블을 돌아가 문재인 대통령의 친서를 전달하려 하자 김 위원장도 자리에서 일어나 걸어왔다. 친서는 테이블 중간 지점에서 전달됐다.

김 위원장은 또 우리 측에서 한반도 비핵화 등 까다로울 수 있는 회담 안건을 꺼내려 하자 “어려움을 잘 알고 있다” “이해한다” 등의 말을 먼저 건네며 거침없이 대화를 이어갔다고 한다. 이 자리에서 김 위원장과 특사단은 ▲ 제3차 남북정상회담 4월 말 개최 ▲ 정상 간 핫라인 설치 ▲ 북한의 비핵화 의지 천명 ▲ 북미대화 용의 ▲ 대화 기간 전략 도발 중단 ▲ 남측 태권도시범단·예술단 평양 방문 등 6개 항목에 합의했다. 이 자리에 있던 한 참석자는 “문재인 정권 출범 직후부터 매우 어려운 과정을 거친 남과 북의 노력이 빛을 발하는 순간이었다”고 표현했다.

김 위원장은 국내·외 언론을 통해 보도된 자신에 대한 평가나 이미지를 아주 잘 알고 있었다고 전해졌다. 김 위원장은 언론의 평가에 대해 다소 가벼운 농담을 섞어가며 여유로운 반응을 보였다. 문 대통령이 ‘베를린 선언’ 이후부터 꾸준히 제시해온 한반도 구상, 메시지 등에 대해서도 상세히 알고 있었다. 관계자는 “문 대통령의 축적된 노력, 그리고 김정은 위원장의 숙성한 고민이 합쳐져서 6개 항목이 나왔다”고 밝혔다.

박은주 기자 wn1247@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