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은 1990년대 이래 미국 또는 북핵 6자회담 참가국과 수차례 비핵화 합의를 내놨지만 하나도 지키지 않았다. 북·미 간 입장차가 커서 합의가 파기된 경우도 있었지만 근본적으로 비핵화에 대한 북한의 진정성 부족이 원인이라는 지적이 많다.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이 실제로 핵을 포기할 수 있을지에 대한 회의적인 시각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첫 북핵 합의는 1994년 북·미 제네바 합의다. 북한이 영변 핵시설 가동을 중단하는 대가로 미국은 북한에 경수로 2기를 제공하는 내용이 골자였다. 경수로 공사 기간 중 미국은 북한에 중유를 제공하고 경수로 완공 이후 영변 핵시설 폐기 등 비핵화 절차에 들어가는 게 핵심 내용이었다.
하지만 제네바 합의는 8년 만인 2002년 파국을 맞았다. 북한이 핵폭탄 원료인 고농축우라늄(HEU)을 개발하고 있다는 의혹을 미국이 제기하자 북한이 이를 인정한 것이다.
2003년부터는 북한의 비핵화 합의 이행을 위해 북·미와 한국 중국 일본 러시아가 참여하는 6자회담이 가동됐다. 6자회담은 2005년 9·19 공동성명을 통해 북한의 모든 핵무기와 현존하는 핵 계획 포기 약속을 이끌어내는 성과를 거뒀다.
하지만 직후 미국 재무부가 북한 위폐 제작·유통을 도운 혐의로 마카오 소재 은행 방코델타아시아(BDA)를 ‘돈세탁 우려기관’으로 지정하고, 이 제재로 BDA의 북한 자금 2400만 달러가 동결된 이후 상황은 급반전됐다. 북한은 2006년 10월 1차 핵실험을 실시하는 초강수를 뒀다.
1차 핵실험 이후 조지 W 부시 행정부가 대북 유화책으로 전환하면서 6자회담 참가국은 2007년 2·13 합의와 10·3 합의 등 9·19 공동성명 이행을 위한 후속조치를 도출했다. 하지만 2008년 12월 북한이 제출한 핵 신고서를 검증하는 문제를 두고 북·미 간 이견이 좁혀지지 않아 6자회담은 끝내 결렬됐다. 북한은 5개월 뒤인 2009년 5월 2차 핵실험을 실시했다.
북·미 양측은 6자회담이 멈춘 이후 첫 합의를 2012년 도출했다. 미국은 버락 오바마 행정부 때인 2012년 북한과 2·29 합의를 했다.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 집권 후 첫 비핵화 관련 합의였다. 2·29 합의에서 북한은 핵실험, 미사일 발사를 중단하고 미국은 그 대가로 대북 영양지원을 하기로 했다.
하지만 북한은 그해 4월 장거리미사일 ‘광명성 3호’를 발사했다. 북한은 광명성 3호가 인공위성 발사체라고 주장했지만 미국이 받아들이지 않음으로써 이 합의 역시 파기됐다.
조성은 기자 jse130801@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