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력자들을 전부 제외하면 무슨 재미가 있을까.”
프로농구연맹(KBL)이 빠르고 재미있는 농구를 추구한다는 명분으로 차기 시즌 외국인 선수의 키를 2m 이하로 제한하기로 규정했지만 농구계 안팎의 반발은 그칠줄 모르고 있다. 하지만 2m를 넘는 선수들의 성적이 현재 KBL에서 부문별로 리그 상위권을 휩쓸고 있어 이들을 배제하는 것이 재미를 줄 것이라는 KBL의 설명을 납득 못하는 팬이 많다. 특히 장신 선수들이 보여주는 호쾌한 덩크슛과 공을 낚아채듯 하는 리바운드 등 농구의 묘미가 줄어들 경우 리그 흥행에 되레 독이 될 수 있다는 우려가 높아지고 있다.
올 시즌 KBL에 등록된 2m 초과 장신 선수는 로드 벤슨(206㎝·원주 DB), 찰스 로드(200.1㎝·전주 KCC), 데이비드 사이먼(203㎝·안양 KGC), 버논 맥클린(202.7㎝·고양 오리온) 4명이다. 이중 벤슨과 로드, 사이먼은 KBL에서 5시즌 이상 활약한 장수 용병이다. 멜클린은 올 시즌 처음으로 KBL 무대를 밟았다.
장신 선수들의 활약을 판가름하는 주요 지표 중 하나는 리바운드다. 사이먼은 7일 기준 경기당 평균 11.06개(3위), 맥클린은 10.14개(6위)의 리바운드를 잡아냈다. 벤슨과 로드는 각각 9.92개, 8.49개씩을 기록 중이다. 네 선수 모두 소속팀에서 가장 많은 리바운드로 팀에 기여하고 있다. 이들의 제공권은 팬들의 눈을 즐겁게 해왔다.
프로농구의 꽃으로 불리는 호쾌한 덩크슛도 2018-2019시즌부터 볼 기회가 부쩍 줄어들지 모른다. 이들 4명은 올 시즌 덩크슛 부문 상위를 독식하고 있다. 맥클린이 1.8개로 1위에 올라 있고, 사이먼은 1.57개(3위), 벤슨과 로드는 1.4개와 1.39개로 그 뒤를 잇고 있다. 덩크슛 시도 횟수도 70회 이상으로 모두 5위 안에 든다. 벤슨은 2011년과 2014년, 로드는 2015∼2016년 덩크슛 부문 1위다. 로드는 부산 kt 시절이던 2012 올스타전 덩크슛 콘테스트 우승자이기도 하다.
신장제한을 통한 득점 상승 효과도 고개를 갸웃거리게 한다. 장신 선수들이 득점력도 뛰어나기 때문이다. 사이먼은 25.76점으로 당당히 1위에 올라 있다. 맥클린은 23.12점(6위)으로 팀 내 주포로 자리 잡았다. 로드(17.61점)와 벤슨(14.32점)은 팀 내 주득점원인 안드레 에밋(KCC), 디온테 버튼(DB)이 함께 뛴다는 점을 감안하면 나쁘지 않은 활약이다.
이 외에도 장신선수들이 쌓아올린 유무형의 콘텐츠가 적지 않아 팬들의 아쉬움은 더욱 크다. 총 5시즌을 뛴 사이먼은 지난 시즌 KGC의 창단 첫 통합 우승을 이끌었다. 올 시즌엔 상대 골을 저지하는 블록슛을 평균 2.14개(1위)씩 기록 중이며, 국내 최고 선수로 거듭난 오세근과의 콤비 플레이로 큰 사랑을 받고 있다.
로드와 벤슨은 2010-2011 시즌부터 각각 7시즌, 8시즌을 보낸 베테랑이다. 로드는 얼굴 옆에서 좌우로 양손을 뻗는 특유의 세리머니로 사랑받고 있다. 벤슨은 DB의 전신 동부에서 김주성, 윤호영과 함께 ‘동부산성’의 주축을 이뤘다. 덩크슛 이후 거수경례 세리머니가 인기 만점이다. 맥클린은 포워드 이승현과 장재석의 군 입대로 전력이 약화된 오리온에서의 고군분투로 주목받았다. 올 시즌 야투성공률은 62.76%로 가장 좋다.
박구인 기자 captai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