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해자들 중에는 (저보다) 더 심하게 당해서 증언을 못하는 사람이 많거든요. 제가 증언하는 건 말할 수 있는 수준이기 때문이에요. 그분들이 이 방송을 보고 상처를 회복하셔서 저처럼 몇 년 동안 암흑기에 살지 않고 다시 꿈을 가지셨으면 해요. 꼭 연기를 하지 않더라도, 그냥 건강하게 살았으면 좋겠어요.”
김기덕 감독에게 성폭행을 당했다는 여배우 C씨가 인터뷰를 마치며 남긴 말이다. 6일 밤 방송된 MBC ‘PD수첩-영화감독 김기덕, 거장의 민낯’에 출연한 그는 한마디 한마디를 힘겹게 꺼내놓았다. 6년 전의 일인데도 선명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그곳은 지옥이었다”고.
과거 김기덕 감독, 배우 조재현과 영화 작업을 했다는 C씨는 촬영 기간 내내 성폭행에 시달렸다고 호소했다. C씨에 따르면 김 김독은 촬영 전부터 노골적으로 성관계를 요구했고, 현장에서는 상습적 성추행을 일삼았다. 주·조·단역을 가릴 것 없이 여배우들을 방으로 불렀고, 밤마다 성관계를 하자며 전화를 하거나 방문을 두드렸다.
C씨는 “성폭행범이고 강간범이다. 근데 왜 처벌 받지 않는지 의아하다”면서 “대부분의 피해자들은 사과를 받고 싶어 하지만 나는 받고 싶지 않다. 거부한다”고 잘라 말했다. 이어 “피해자들에 대한 예의로 (그들도) 남은 삶을 반성하면서 살아야 된다고 생각한다”며 “왜 피해자들만 꿈을 꺾고 괴로워해야 하는지 (모르겠다)”고 토로했다.
“저는 영화감독이란 지위로 개인적 욕구를 채운 적이 없고 항상 그 점을 생각하며 영화를 찍었다”는 김기덕 감독의 해명에 대해 C씨는 “이건 너무 코미디다. 내가 봤을 땐 그게 목적인 것 같았다”고 코웃음 쳤다.
또 “일방적인 감정으로 키스를 한 적은 있으나 동의 없이 그 이상의 행위를 한 적은 없다”는 김기덕 감독의 말에는 “그가 나를 성폭행하면서 ‘(예전엔) 누구와 어떻게 했다’는 말을 늘 자랑처럼 했었다. 근데 그렇게 얘기를 하나”라고 어이없어했다.
C씨는 “(성폭력을 당한) 배우들이 고통 받는 동안 그분들은 승승장구했다. 그들은 피해 여성들이 얼마나 고통스러웠는지 아마 기억도 못할 것”이라며 “그 여배우들은 어둠 속에서, 죽음 앞에서, 삶도 포기하고 살았다. 꿈은 이미 짓밟힌 지 오래다. 숨도 쉴 수 없는 상태였다. 지금은 그냥 살아있는 게 감사하다는 생각을 할 뿐”이라고 얘기했다.
김기덕 감독과 조재현뿐 아니라, 두 사람의 성폭행 사실을 알게 된 조재현의 매니저까지 덩달아 C씨에게 강간을 시도했다고 한다. 이후 5~6년간 정신과 치료까지 받았다는 그가 어렵게 당시의 기억을 꺼낸 이유는 자신과 비슷한 피해를 당한 여성들을 위해서란다. C씨가 폭로한 충격적인 발언들을 아래에 상세히 싣는다.
“캐스팅 직후 만나자는 연락이 왔어요. 본인의 인생 이야기도 하고, 영화 이야기도 하고, 저한테 질문도 하고. 감독님이 되게 인간적이시구나 생각했죠. 되게 좋은 시간을 보냈는데, 날이 어두워지니 자꾸 어두운 쪽으로 산책을 가자고 하시더라고요. 앉아서 강을 보다가 갑자기 제 엉덩이에 손을 쑥 넣더라고요. 제가 ‘어, 왜 이러시냐’고 그랬더니 ‘미안해. 엉덩이가 너무 예뻐서 만져보고 싶었다’는 거예요. 그래서 ‘저 이러면 영화 못 찍는다’고 하니까 사과를 하더라고요. ‘알겠다’고 하고 그렇게 헤어졌어요 그날은.”
“스태프들이 다 같이 모여 있다며 홍천으로 절 불렀어요. 가보니 감독님 혼자 계셨죠. 영화 ‘수취인불명’ 세트로 쓰였던 빨간 버스가 세워져 있었어요. 거기서 저한테 성폭행을 시도했던 것 같아요. ‘너를 알아가야 된다’면서 막 옷을 벗기려 했어요. 거부하는데도 옷이 찢어질 정도로…. 온몸으로 반항하고 저항했더니 제 따귀를 한 10대는 때린 것 같아요. 구타를 당한 거죠. 울면서 집에 돌아왔는데 문자가 10통이 넘게 와 있더라고요. 너무 미안하다고, 내가 어릴 때 아버지한테 맞고 자라서 자꾸 손이 올라간다고. 내가 널 사랑하는 것 같다고. 마치 좋아해서 그런 것처럼 구슬리더라고요.”
“영화 촬영이 시작되고 숙소 생활을 했는데, 그 합숙장소가 지옥이었어요. 무슨 여자를 겁탈하려고 모인 곳 같았어요. 김기덕 감독, 조재현씨, 조재현씨 매니저 이렇게 세 명이 하이에나처럼 그렇게 방문을 두드렸어요. 방 전화로도 전화를 하고. 혼자 있을 때는 김기덕 감독과 조재현씨 중 누가 찾아올지 모른다는 불안감에 너무 무서운 거예요.”
“김기덕 감독 방에 갔다가 성관계 장면을 목격하는 경우도 있었어요. (불러서) 방에 가보니 이미 다른 단역 여배우가 있는 거예요. 그래서 그냥 문 닫고 나오거나, 밖에서 소리 듣거나, 아니면 안에 누가 있다고 말하거나. 그런 걸 너무 당연하게 받아들였던 것 같아요. ‘원래 그런 사람이구나. 이 감독님 작품에 출연하려면 이 꼴을 보는구나’ 했죠.”
“(성폭행을 피하려고) 몸싸움을 진짜 많이 했어요. 겁탈하려고 하니까. 그래서 항상 몸살이 났어요. 늘 그거에만 혈안이 돼있어요. 영화보다 그게 목적인 것 같았어요. 늘 몸싸움을 해야 해서 그게 너무 힘들었고 무서웠어요. 결국에는 방으로 불러서 절 성폭행하셨어요. 영화를 계속 찍어야 될지 말아야 될지 고민했지만, 그땐 너무 어려서 그만두는 방법을 몰랐어요. 그후 감독님이 저한테 ‘이런 관계가 유지돼야 (너와) 다음 작품도 할 수 있다’고 하시더라고요.”
“조재현씨도 끊임없이 방으로 들어오려고 시도했어요. 잠깐만 문 열어보라고 해서 여니까 들어와서는 갑자기 다짜고짜 저한테 키스를 하는 거예요. ‘왜 이러시냐. 분명 결혼도 하셨고. 지금 촬영하는 중인데 왜 이러냐’고 그랬을 때 ‘좋아서 그런다. 원래 이렇게 잘 지내는 거다’라고 얘기를 하더라고요. 분위기를 되게 고통스럽게 만들어서 그때부턴 저도 제정신이 아니게 됐어요. 여배우들끼리 누가 누굴 챙길 수 없는 상황이었죠. 다 같이 정신이 나가있어요. 노크 자체가 너무너무 공포스러웠어요. 공포의 전화벨, 공포의 문 두드림.”
“그러고 나서 조재현씨 매니저가 저한테 추근거리기 시작했어요. ‘조재현씨랑 묶어서 앞으로 영화 일을 봐줄 테니까 자기랑 한번 잤으면 좋겠다’고 제안을 하더라고요. 싫다고 했더니 ‘너 김기덕 감독이랑 조재현이랑은 잤잖아’라고 말을 하는 거예요. 그들 사이에서 그런 이야기를 공유하고, 서로 약간 경쟁이 붙었어요. 자기들끼리 낄낄대고 웃으면서 그런 얘기를 해요. 농담으로. 나중에 그 사실을 안 김기덕 감독은 ‘어후, 그냥 한번 대주지 그랬어’ 이렇게 말을 하더라고요.”
“김기덕 감독과 조재현에게 당한 피해자가 많은데 (겉으로) 드러나지 않더라고요. 왜인지 알아봤더니 다들 이 사람들이 가진 힘을 되게 두려워해요. 그들은 돈도 많고 지위도 높으니까. 말을 했을 때 오히려 그 여배우들을 우습게 만들어버릴 힘을 가지고 있으니까요. 다들 두려움을 느끼고 있어서, 제가 용기를 낸 것 같아요. 그들을 생각하면서.”
방송에서 두 사람은 각자 나름의 해명을 내놨다. 공통적인 것은, 자신의 잘못을 완전히 인정하는 뉘앙스로 읽히지 않는다는 점이다.
김기덕 감독은 “미투 운동이 갈수록 더 자극적이고 충격적인 내용을 기다리고 또 사실 확인 없이 공개되어 진실이 가려지기 전에 사회적 매장을 당하고 그 후에는 평생 고통에서 벗어나지 못한다”고 했다. 조재현은 “내가 죄인이 아니라는 게 아니다. 그런데 지금 기사에 나오는 얘기들은 사실과 다르게 왜곡된 것들이 너무나 많다”고 주장했다.
권남영 기자 kwonn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