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출신의 세계적인 테너 이언 보스트리지(54)는 ‘노래하는 인문학자’로 통한다. 학자의 길을 걷다가 정상의 성악가로 거듭나서다. 보스트리지가 서울시립교향악단이 올해 첫 도입한 ‘올해의 음악가’에 선정돼 한국을 찾았다. ‘올해의 음악가’는 매년 특정 아티스트를 선정해 음악 세계를 집중 조명하는 제도다. 보스트리지는 이달 공연을 시작으로 7월과 11월 세 달에 걸쳐 올해 총 7번 한국 관객을 만난다.
보스트리지는 5일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참여하는 의미를 밝혔다. “지역별 문화별로 다른 나라에서 온 사람들이 음악을 통해 정치적, 예술적으로 하나로 이어질 수 있는 기회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소감은 이렇게 전했다. “가수로서 사랑하는 나라에서 노래 부르는 건 멋진 일입니다. 정기적으로 관객을 만날 기회가 있는데 마다할 이유가 없습니다.” 이탈리아 피렌체에서 열린 한 콘퍼런스에서 진은숙 서울시향 전 상임작곡가의 제안을 수락했다고 전했다.
한국은 보스트리지에게 낯설지 않은 나라다. 이미 15년 전쯤 한국을 처음 방문했다. 2016년에는 리사이틀 공연도 열었다. 당시 세계 10개가 넘는 언어로 출판된 보스트리지의 베스트셀러 ‘슈베르트의 겨울 나그네’는 한국어 번역본으로도 나왔다.
한국 클래식 관객을 어떻게 생각할까. “클래식 음악에 지식이 풍부하고 열정이 가득해서 놀랐습니다. 클래식 음악에도 조예가 깊다고 느꼈습니다. 유럽 관객은 보통 연령대가 높은데 한국은 연령대가 다양해 신기했습니다.” 클래식 음악이 록, 대중음악 등 다른 장르와 폭넓게 교류하면서 넓게 퍼진 것도 흥미롭다고 전했다.
보스트리지는 영국 옥스퍼드대와 케임브리지대에서 철학과 역사학 박사 학위를 받았고 옥스퍼드에서 역사를 가르치던 중 성악가의 길을 걸었다. 1993년 성악가로 데뷔한 후 96년 첫 음반인 슈베르트 연가곡 ‘아름다운 물방앗간의 아가씨’로 그라모폰 솔로 보컬상을 받았다. 98년 발표한 슈만의 연가곡 ‘시인의 사랑’ 음반은 그라모폰 베스트 솔로 보컬상을 수상했다. 그동안 그래미상 후보에 15차례나 올랐다.
역사학자에서 음악가로의 변신은 긴 과정이었다. 하지만 서로 다르지 않는 방향이었다. “노래할 때도 집중하고 분석해야 하는 일이 있어서 학자로서의 경험이 큰 도움이 됩니다.” 음악가로서의 활동에도 애정을 드러냈다. “짧은 순간에 살아있는 음악을 구현해내는 것에 만족이 큽니다. 예전보다 풍성한 시각을 지니게 됐죠.”
보스트리지는 앞서 해외 유수의 공연장에서 서울시향의 ‘상주 음악가’와 같은 제도를 맛봤다. 영국 바비칸센터와 미국 카네기홀, 독일 함부르크 라이스할레 등에서 상주 음악가로 활약했다. “이 제도의 장점은 장기간 다양한 시도를 해볼 수 있다는 것입니다. 가장 중요한 건 다른 음악가들과 우정을 쌓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돈독한 관계에서 나오는 힘이 음악에 새로운 생명을 불어넣는다고 믿습니다.”
6일은 실내악, 10~11일은 관현악으로 서울시향과 첫 협연 무대를 꾸민다. 이달과 7월의 공연 장소는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 11월의 장소는 송파구 롯데콘서트홀이다. 모든 무대는 의미가 있다. 6일 무대는 슈베르트가 베토벤에게 어떤 영향을 받았는지에 초점을 맞춘다. 10~11일에는 프랑스 작곡가 클로드 드뷔시의 ‘세 개의 녹턴’을 선보인다. 영국 작곡가 벤저민 브리튼의 ‘테너와 오케스트라를 위한 녹턴’을 한국 초연한다. 또 다른 영국 작곡가 구스타브 홀스트의 ‘행성’도 들려줄 예정이다.
권준협 기자 gao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