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은 대북 특사단의 방북 상황을 이례적으로 신속하게 보도하고 있다. 사전에 문재인 대통령 특사단이 방북 일정을 예고 기사로 내보낸 데 이어 평양 도착과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 접견 사실도 곧바로 공개했다. 노동신문은 1면과 2면을 할애해 이를 대대적으로 보도했다.
그러나 북한 매체의 기사에서 찾아볼 수 없는 한 단어가 있었다. 남북관계 개선, 한반도 평화 정착, 안전 보장 등의 회담 내용을 전하면서 ‘비핵화’ 부분은 언급하지 않았다.
북한 조선중앙통신과 노동신문은 “김정은 동지께서 5일 평양에 온 남조선 대통령의 특사 대표단 성원들을 접견했다. 최고영도자 동지께서는 특사와 일행의 손을 일일이 뜨겁게 잡아주시며 그들의 평양 방문을 열렬히 환영했다”고 보도했다.
접견에는 김여정 노동당 제1부부장과 김영철 통일전선부장 등이 참석했다는 사실을 전하며 “한 핏줄을 나눈 겨레로서 동족의 경사를 같이 기뻐하고 도와주는 것은 응당한 일”이라는 김 위원장의 발언을 소개했다. 또 김 위원장이 “겨울철올림픽경기대회가 우리 민족의 기개와 위상을 내외에 과시하고 북과 남 사이에 화해와 단합, 대화의 좋은 분위기를 마련해나가는데서 매우 중요한 계기로 됐다”고 말했다고도 했다.
북한 매체들은 김 위원장과 특사단이 남북관계 개선과 한반도 평화, 안정 보장과 관련해 허심탄회한 대화를 나눴다고 밝혔다. 다만 ‘비핵화’ 관련 언급은 보도에 나타나 있지 않았다. 김 위원장이 남북정상회담에 대한 문 대통령의 뜻을 전해 듣고 의견을 교환해 ‘만족한 합의’를 봤다고 공개하면서도 특사단이 북한에 확실히 전하겠다고 했던 ‘문 대통령의 비핵화 의지’에 대해선 침묵했다.
노동신문은 김 위원장이 “우리 민족끼리 힘을 합쳐 세계가 보란 듯이 북남관계를 활력 있게 전진시키고 조국통일의 새 역사를 써나가자는 것이 우리의 일관하고 원칙적인 입장이며 자신의 확고한 의지”라고 말했다고 덧붙였다.
북한은 이번 특사단을 전례 없이 환대했다. 남측 인사가 방문한 적 없는 고방산 초대소를 숙소로 잡은 데 이어, 사상 처음으로 남측 인사가 노동당 본관을 방문해 만찬까지 했다. 북한이 최고지도기관인 노동당 건물을 우리 측에 공개한 것은 매우 이례적이다.
북한은 당이 국가와 군대를 통솔하는 당·국가 체제다. 정부기관보다 당의 권위가 훨씬 높다. 김정은 위원장의 집무실도 이곳에 있다. 김 위원장은 신년사 발표나 핵·미사일 실험 결재 등 중요 결정을 내릴 때마다 이곳에서 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 시절에는 선군정치로 노동당의 기능이 상당히 약화돼 있었다. 김정은 위원장은 아버지 시절 공석으로 놔뒀던 자리들을 속속 채우면서 당 기능 정상화에 한동안 힘을 쏟았다. 이에 노동당 본관이 우리의 청와대에 상응하는 최고지도자 집무실 지위를 얻게 된 것이다. 할아버지인 김일성의 집무실은 현재 ‘금수산태양궁전’인 주석궁이었다.
태원준 기자 wjta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