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폭행 의혹에 휩싸인 안희정 충남도지사가 모든 정치활동을 중단하겠다고 밝혔다. 안 지사의 정무비서 김지은씨가 방송에서 성폭행 피해를 폭로한 뒤 4시간 만에 내린 결정이다. 안 지사는 거듭 “죄송하다”고 했다. 그러나 사과에 ‘강간’이나 ‘성폭행’이라는 단어는 없었다.
안 지사는 5일 밤 12시49분 페이스북에 사과문을 게시했다. 그는 “모든 분들께 정말 죄송하다. 무엇보다 저로 인해 고통을 받았을 김지은씨에게 정말 죄송하다”며 “저의 어리석은 행동에 대해 용서를 구한다”고 썼다. 사실상 성폭행을 인정하는 글이었다.
그러나 안 지사는 강간을 ‘어리석은 행동’이라고 추상적으로 표현했다. 구체적으로 김지은씨에게 어떤 고통을 주었는지는 언급하지 않았다. 다른 피해자가 더 있다는 김지은씨의 주장에 대해서도 침묵했다.
그러면서 “합의에 의한 관계였다는 비서실의 입장은 잘못”이라고 적었다. 성폭행을 부인한 것은 자신의 뜻이 아니었다는 점을 내비친 것이다. 안 지사는 이어 “오늘부로 도지사 직을 내려놓겠다. 일체의 정치 활동도 중단하겠다”며 “다시 한 번 모든 분들께 정말 죄송하다”고 글을 맺었다.
안 지사의 사과문은 앞서 ‘미투’ 고발로 사과문을 낸 연출가 이윤택씨, 배우 조민기 조재현 오달수 등의 입장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이들 모두 “피해자에게 죄송하다”면서도 자신이 무슨 범죄를 저질렀는지는 명시하지 않았다. 성추행·성폭행을 ‘나쁜 행태’ ‘추악한 행위’ 등의 단어로 대신했을 뿐이다. 사과문으로 비난 여론을 가라앉히고, 실제 수사기관에서는 혐의를 다툴 여지를 남겨둔 것으로 보인다.
안 지사는 6일 오전 관사로 출근하지 않고 모습을 감췄다. 그는 윤원철 정무부지사를 통해 정무라인 공무원 전원과 사퇴하겠다는 뜻을 전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안 지사의 수행비서로 일하며 4차례 성폭행을 당했다”고 주장한 김지은씨는 이날 안 지사를 성폭행 혐의로 고소할 예정이다.
박상은 기자 pse0212@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