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코리아’ 샌드위치 신세?… 손잡는 美 인텔·中 칭화유니

입력 2018-03-06 07:00

미국 인텔과 중국 칭화유니그룹이 데이터 저장용 반도체인 낸드플래시 생산·판매에서 협력을 강화한다. 미국의 반도체 기술과 중국의 자본력이 더해진 미·중 반도체 연합이 결성될지 주목된다. 국내 반도체업계는 인텔의 중국 내 영향력 확대와 중국의 ‘반도체 굴기’ 사이에 낀 샌드위치 신세가 될 것을 우려하고 있다.

5일 시장조사업체 D램익스체인지 등에 따르면 인텔은 최근 칭화유니그룹의 두 자회사 ‘양쯔메모리테크놀로지(YMTC)’ ‘UNIC메모리테크놀로지’와 낸드플래시 부문에서 중장기적으로 협력하는 방안을 논의하고 있다. D램익스체인지는 “두 회사는 인텔에서 낸드플래시를 공급받아 솔리드스테이트드라이브(SSD) 등 다양한 메모리 상품을 만들어 현지에서 판매할 것”이라며 “YMTC는 플래시 메모리 제품 개발 및 생산을, UNIC는 판매를 담당할 것으로 보인다”고 내다봤다.

이 구상이 실행되면 인텔의 중국 내 영향력은 더 커질 것으로 보인다. 인텔은 2014년 칭화유니그룹 지분 20%를 인수하는 등 반도체업체 가운데 중국과 가장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국내 업계가 인텔에 중국 내 낸드플래시 점유율을 뺏길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인텔이 올 초 미국 마이크론테크놀로지와 결별한 직후 칭화유니그룹과 적극적으로 접촉하고 있는 점도 눈길을 끈다. 기존 인텔·마이크론 연합이 인텔·칭화유니그룹 연합으로 대체될 가능성이 높아진 것이다. 인텔은 지난 1월 메모리 반도체 시장점유율 3위 마이크론과 12년 이상 유지해온 낸드메모리 공동 개발을 중단한다고 밝혔다.

업계에서는 인텔이 마이크론보다 기술력이 약한 중국 업체에 손을 내민 건 중국 정부의 반독점 조사 가능성과 중국 시장의 잠재력 등 여러 변수를 함께 고려했기 때문이라고 보고 있다. 인텔이 자국 기업 대신 반도체 최대 시장인 중국의 눈치를 더 살핀다는 해석도 나온다.

업계 일각에서는 중국이 인텔 기술을 흡수해 삼성전자 등 기존 업체와의 기술격차를 예상보다 빨리 좁혀나갈 것이라고 분석한다. 중국이 2∼3년간 저가 제품으로 물량 공세를 펼 것이란 예상과 달리 고성능 낸드플래시 개발에 집중해 반도체 굴기를 앞당길 수 있다는 의미다.

위기론을 얘기하기는 이르다는 반론도 있다. 삼성전자·SK하이닉스와 중국 업체들과의 기술격차가 아직까진 벌어져 있다는 진단이다. 업계 관계자는 “인텔과 칭화유니그룹의 이번 협력은 기술 공유보다는 중국 내 판매 촉진을 의도한 것으로 보인다”며 “국내 업계가 당장 타격을 받진 않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오주환 기자 johnny@kmib.co.kr, 그래픽=이석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