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색약 문제 안 된다더니 “불합격”… 취준생 울린 종근당

입력 2018-03-06 02:42
종근당 생산관리직 응시자, 회사에 색약 사실 알렸지만
문제없다며 회식 참여 권유… 합격한 타 회사 입사도 포기
회사측 “색약자 근무 부적격 최종합격 통보한 것 아니다” 인권위, 색약차별 금지 권고


국내 굴지의 제약업체가 색약을 이유로 최종면접을 통과한 응시생의 합격을 취소한 것으로 드러났다. 취업 때 색약자 차별 금지는 국가인권위원회 권고 사항이며 회사 측도 애초 사원모집 공고 때는 이를 명시하지 않았다.

응시생은 입사 과정에서 자신의 색약 사실을 회사 측에 여러 차례 알렸고 “문제가 안 된다. 입사 전 회식에 참석하라”는 실무자의 답을 받았다. 회사 측은 그러나 “최종합격 통보는 하지 않았다”며 문제될 게 없다고 해명했다.

제약 관련 학과를 졸업한 취업준비생 A씨(29)는 지난해 12월 종근당 생산관리 부문 신입사원 채용에 지원해 모든 전형을 합격하고 채용검진을 받았다. A씨는 색약이 최종 합격 여부에 영향을 끼칠 수도 있다는 생각에 검진 전 회사에 알렸다. 회사 측은 “문제가 안 된다”며 A씨를 안심시켰다. 당시 본사 인사담당자는 A씨에게 “전염성 강한 질병이나 B형 감염 보균자만 아니면 된다. 색약은 상관이 없다”고도 했다.

종근당 생산라인 실무진도 색약이 업무에 큰 지장을 안 준다고 판단했다. 생산라인 팀장 B씨는 지난달 14일 A씨와의 통화에서 “업무상 별 문제가 없어 보인다”며 “시간이 괜찮으면 23일 회식에 참석하고 26일부터 출근을 하면 되겠다”고 말했다. B씨는 A씨 어머니에게도 “의약품을 만드는 일이라 오류가 생기면 안 되지만 색약 때문에 입사 기회를 박탈하고 싶지 않다”며 “3개월 수습 기간 중 색약이 문제가 되면 그때 다시 논의하면 된다”고 설명했다.

서울에 사는 A씨는 회사의 답을 받고 지난달 19일 충남 천안의 회사 근처에 방을 구했다. 다른 기업체에서도 최종 합격 통보를 받았지만 입사를 포기하고 종근당을 택했다.

이틀 후 종근당 본사 인사팀은 A씨에게 “색약자가 생산라인에서 일하는 게 부적합하다는 방침을 세웠다”며 채용 불가 입장을 알려왔다. 종근당은 채용공고에 ‘신체검사 결과 결격사유가 있는 경우 최종 합격이 취소될 수 있다’고만 공지했었다. 종근당 관계자는 “A씨가 지원한 분야가 알약을 생산하는 고형제 부문으로 색약자가 일하기 부적격하다고 판단해 탈락시켰다”며 “최종합격을 통보한 것은 아니었다”고 해명했다.

A씨는 5일 국민일보와의 통화에서 “채용 과정에서 색약이 문제가 안 된다는 말을 수차례 들었다. 입사 전 팀 회식에 오라는 팀장 말을 듣고 공장 근처에 집까지 구했다”며 “어떤 취업준비생이 그런 말을 듣고 불합격을 생각하겠느냐”고 말했다. A씨가 문제를 제기하자 회사는 도의적 차원에서 A씨의 부동산 계약금 50만원을 주기로 했다.

국내 다른 제약업체 관계자는 “색약은 결격사유가 아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만약 문제가 된다고 해도 부서이동을 통해 조정할 수 있다”고 했다. 다른 제약업체 관계자는 “색각이상 테스트는 차별이 될 수 있어 우리 회사는 아예 안 하고 있다”고 말했다. 서울아산병원 안과 전문의도 “색약자는 색깔을 다르게 느낄 뿐이지 고형제 부문에서 일하는 데 큰 무리가 있다고 보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색약은 선천적 또는 후천적 이유로 색깔을 구분하는 능력이 떨어지는 현상으로 한국인의 약 6%가 해당된다. 인권위는 2003년 “입사지원 때 색맹과 색약을 명시하는 건 차별을 유발할 우려가 있다”며 직권조사를 실시, 조사대상 기업 38곳 중 해당 업체 9곳의 자진 삭제를 이끌어냈다.

손재호 기자 sayho@kmib.co.kr 그래픽=공희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