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축 살처분 경험자 76% “트라우마 겪었다”

입력 2018-03-05 05:56
뉴시스

공무원과 수의사 등 가축 살처분에 참여한 이들 10명 중 7명이 외상후스트레스장애(PTSD)를 겪고 있다는 조사 결과가 나왔다.

국가인권위원회는 서울대 사회발전연구소에 ‘가축 살처분 트라우마 현황 실태조사’를 의뢰한 결과, 조사 대상자의 76.0%가 PTSD 기준인 25점을 넘어섰다고 4일 밝혔다. 연구소는 구제역과 조류인플루엔자(AI) 등의 확산을 막기 위한 가축 살처분에 참여한 공무원·수의사 등 277명을 대상으로 PTSD를 겪고 있는지를 지난해 10∼12월 조사했다. 조사는 22개 문항에 0∼4점을 매기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살처분 이후 정신적·육체적 건강 관련 검사나 치료를 받은 경험이 있다고 응답한 비율은 13.7%에 그쳤다.

연구소는 벡 우울척도(BDI)를 이용해 우울 정도를 측정한 결과에서도 평균 14.5점을 보였다고 밝혔다. 이 척도는 10∼15점을 경우울증, 16∼23점 우울증, 24∼63점 중우울증으로 분류한다. 전체 조사대상자의 23.1%가 중우울증에 해당하는 점수를 받았다.

이들은 심층면접 조사에서도 고충을 토로했다. A씨는 “(가축을) 죽여서 묻어야 하는, 학살의 주체가 돼야 하는 상황이었다”며 “피할 수 없는 역할이라 자괴감에 빠지게 된다”고 말했다. B씨는 “최선을 다할수록 동물들한테 도덕적 윤리적 자책감을 갖게 된다는 건 문제가 있다”고 했다.

연구소는 “살처분 참여 경험이 심리적 충격을 주고 우울감을 높일 뿐만 아니라 정서적으로도 부정적 영향을 미친다는 점을 보여주고 있다”며 “살처분 과정에서 정신적 충격을 최소화하는 방법을 찾고, 참여자들에 대한 심리적 지원이 상시적으로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허경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