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좀 더 구체화한 ‘북미대화 조건’ 제시… “평등한 입장”

입력 2018-03-04 14:00

미국과 대화할 의사가 “충분히 있다”고 밝힌 북한이 ‘대화의 조건’을 조금 더 구체화했다. 북한은 “평등한 입장에서” 대화가 이뤄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자신도 핵을 가졌으니 그에 걸맞은 대우를 받아야겠다는 뜻으로 읽힌다.

북한 외무성 대변인은 3일 “우리는 대화와 협상을 통해 외교적으로 문제를 해결할 의지가 있지만 결코 대화를 구걸하거나 미국이 떠드는 군사적 선택을 피하지도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도 “우리가 지향하는 대화는 평등한 입장에서 상호 관심사를 해결하는 대화”라고 대화 조건을 좀 더 구체화했다.

조선중앙통신에 따르면 외무성 대변인은 “조·미 회담 역사에서 우리는 단 한 번도 미국과 전제조건적인 대화탁자에 마주앉은 적이 없으며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고 주장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이 “적절한 조건에서만 대화하기를 원한다”고 밝힌 데 대한 반응으로 보인다. 마크 내퍼 주한 미국 대사대리 역시 “비핵화 목표가 없는 대화를 원하지 않는다”며 공은 북한에 넘어가 있다고 말했었다.

외무성 대변인은 “상호 관심사로 되는 문제들을 논의해 해결하는 대화”를 지향한다고 덧붙였다. 이는 북한이 원하는 체제 보장과 함께 미국이 요구하는 핵 문제도 논의할 수 있다는 뜻을 내비쳤다. ‘상호 관심사’는 미국의 최대 관심사인 ‘비핵화’를 포괄하는 표현으로 해석된다.

문재인 대통령이 이번 주 파견하는 대북 특사단은 이처럼 ‘대화 조건’을 놓고 신경전을 벌이는 북한과 미국 사이에서 중재 역할을 수행하게 된다. 청와대 관계자는 “이번 대북 특사단은 북·미 대화에 대한 문 대통령의 각별한 관심을 전달하러 가는 것”이라며 “청와대와 통일부, 외교부, 국정원 등 유관 부처의 고위직들이 참여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또 특사 파견 목적에 대해서는 “남북 관계와 북·미 대화에 대해 북한이 어느 정도 의지를 가지고 있는지 확인해야 한다”며 “북한이 생각하고 있는 여러 이야기들을 듣고 올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북한 고위급 대표단이 방남했을 때 정부 기관과 릴레이 회담을 했던 걸 생각하면 된다. 실무선에서 이야기하는 수준은 넘어설 것”이라고 말했다.

대북 특사가 평창 동계패럴림픽 개막(9일) 전 파견된다면 북한이 패럴림픽에 고위급 대표단을 다시 내려 보낼 개연성도 있다. 이 경우 미국의 평창패럴림픽 대표단장으로 임명된 커스텐 닐슨 미 국토안보부 장관과의 접촉 가능성이 제기된다.

대북 특사 파견에 따른 북·미 간 후속논의가 이뤄질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 청와대 핵심 관계자는 “평창 동계올림픽 개막식 당시 마이크 펜스 미국 부통령과 김여정이 만나기로 했던 것을 생각해보라”며 “현재 상황은 우리가 미국에 단순히 ‘대화를 해야 한다’고 권유하는 단계는 넘어섰다고 보면 된다”고 전했다.

태원준 기자 wjta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