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만의 ‘대북특사’, 사상 첫 ‘공개특사’… 임무는 ‘중매’

입력 2018-03-04 09:17
정의용 국가안보실장(왼쪽)과 서훈 국가정보원장. 뉴시스

청와대는 4일 대북특사단을 확정해 파견 계획을 발표한다. 서훈 국가정보원장과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이 함께 특사단을 이끌게 됐다. 이번 주 중 평양에 갈 것으로 보인다. 북한의 ‘김여정 특사’ 파견에 대한 답방 차원이며 “북한 고위급 대표단 방남 때 논의했던 내용을 확인하기 위해” 가는 것이라고 정부는 밝혔다.

이명박 박근혜 정부를 제외하곤 역대 정부마다 북한에 특사를 보냈지만 대부분 사후에 알려진 ‘밀사(密使)’였다. 사전에 면면과 일정을 발표하고 공개적으로 보내는 특사는 사실상 처음이다.

◆ 대북통 서훈·대미통 정의용 나란히… ‘중매 특사’

역할도 달라졌다. 과거의 특사들이 남북정상회담 협의 등 ‘남북관계 돌파구’ 마련의 특명을 띠고 갔다면, 이번 특사에게는 ‘북미관계 중재’라는 초유의 임무가 주어졌다. 김영청 북한 통일전선부장의 방남 뒤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한국 정부의 상황을 “북한과 미국 사이에서 중매하는 입장”이라고 표현했다. 조소한 북미대화가 이뤄지도록 조율하기 위해 평양에 특사를 보내는 것이다.

특사단의 면면은 이를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청와대 관계자는 3일 “서훈 국가정보원장과 정의용 외교안보실장을 함께 파견키로 했다”고 밝혔다. 통상 특사 1명과 조력자들로 구성되던 전례와 달리 장관급 인사 2명을 통시에 보내기로 한 것이다. 그것도 대북통인 서훈 국정원장과 대미통인 정의용 안보실장이 나란히 발탁됐다. 북한·미국과 각각 말이 통하는 두 사람을 북한과 미국의 ‘중매쟁이’로 파견하는 셈이다.

서 원장은 2000년 1차 남북정상회담과 2007년 2차 남북정상회담에 관여했으며, 북한 고위당국자들과 협상을 해온 경험이 풍부한 대북전략통이다. 특히 김여정 특사와 김영철 통일전선부장의 방남 과정에서 남측 카운터파트로서 협의를 해와 일찌감치 대북특사 후보로 유력히 거론돼왔다.

정 실장은 허버트 맥매스터 국가안보보좌관 등 미국 백악관 핵심라인과 직접 소통이 가능한 인물로, 김 위원장의 의중을 정확히 파악하고 이를 백악관과 공유하는 핵심적 역할을 맡을 것으로 보인다. 정 실장은 평양에 다녀오는 대로 워싱턴을 방문해 방북 결과를 직접 설명하고 향후 대북공조 방향을 조율할 것으로 예상된다.


◆ 역대 대북특사 임무는 ‘남북관계’… 이번엔 사상 첫 ‘공개 특사’

역대 정부는 남북관계가 막혔을 때 대화 물꼬를 트기 위해 대북특사를 파견하곤 했다. 정보수장이나 대통령의 최측근이 주로 그 역할을 맡았다. 하지만 대부분 특사라기보다 밀사에 가까웠다.

1972년 5월 박정희정부는 이후락 중앙정보부장을 북한에 특사로 보냈다. 이 부장은 만약의 경우 자결하기 위해 청산가리 캡슐을 가지고 방북했다. 김일성 주석을 면담하고 7·4 남북 공동성명을 성사시켰다. 대북 특사의 시작이었다.

전두환정부에서도 박철언 안기부장 특보와 장세동 안기부장이 밀사로 나서서 남북정상회담을 타진했으나 실패했다. 노태우정부는 서동권 안기부장을 북한에 보냈지만 역시 정상회담 합의에 이르지 못했다.

김대중정부는 2000년 3월 최측근인 박지원 문화부장관을 특사로 보냈다. 박 장관은 싱가포르와 중국에서 네 차례 남북 접촉을 통해 남북정상회담을 타진한 끝에 정상회담을 성사시켰다. 그해 5월 임동원 국정원장이 평양을 찾아 첫 남북정상회담을 사전 조율했다.

노무현정부 때는 2005년 6월 정동영 통일부 장관이 6자회담을 거부하는 북한을 설득하라는 특명을 받고 방북했고, 한 달 뒤 북한이 6자회담에 복귀했다. 그해 9월 북핵 해결을 위한 로드맵인 9.19 공동성명이 채택됐다.

마지막 특사는 2차 남북정상회담을 앞두고 2007년 8월 방북한 김만복 국정원장이었다. 김 원장도 비밀리에 방북했다. 문재인정부의 대북 특사는 공식 임명과 공개 방북을 하는 첫 사례가 된다.


◆ 매머드급 특사단… “북한의 북미대화 의지 확인할 것”

청와대 관계자는 “이번 대북 특사단은 북·미 대화에 대한 문 대통령의 각별한 관심을 전달하러 가는 것”이라며 “청와대와 통일부, 외교부, 국정원 등 유관 부처의 고위직들이 참여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특사 파견 목적에 대해서는 “남북 관계와 북·미 대화에 대해 북한이 어느 정도 의지를 가지고 있는지 확인해야 한다”며 “북한이 생각하고 있는 여러 이야기들을 듣고 올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북한 고위급 대표단이 방남했을 때 정부 기관과 릴레이 회담을 했던 걸 생각하면 된다. 실무선에서 이야기하는 수준은 넘어설 것”이라고 말했다.

대북 특사가 평창 동계패럴림픽 개막(9일) 전 파견된다면 북한이 패럴림픽에 고위급 대표단을 다시 내려 보낼 개연성도 있다. 이 경우 미국의 평창패럴림픽 대표단장으로 임명된 커스텐 닐슨 미 국토안보부 장관과의 접촉 가능성이 제기된다.

대북 특사 파견에 따른 북·미 간 후속논의가 이뤄질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 청와대 핵심 관계자는 “평창 동계올림픽 개막식 당시 마이크 펜스 미국 부통령과 김여정이 만나기로 했던 것을 생각해보라”며 “현재 상황은 우리가 미국에 단순히 ‘대화를 해야 한다’고 권유하는 단계는 넘어섰다고 보면 된다”고 전했다.

태원준 기자 wjta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