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일 새 학기가 시작되면서 전국 곳곳의 학교들에서는 신입생들의 입학식이 열렸다. 전국이 화창한 가운데, 강원도 평창의 한 초등학교에서는 조금 특별한 입학식이 치러졌다. 평균 연령이 71.6세인 세 명의 할머니가 손자뻘 신입생 2명과 함께 글을 배우기 위해 1학년으로 입학했다.
전일옥(77), 박고이(73), 박경순(65) 할머니는 이날 오전 강원도 평창 방림초등학교에 입학했다. 함께 입학한 학생은 이제 8살이 된 김형우군과 차예서양이고, 담임선생님은 할머니들 평균 나이의 반도 안 되는 박준미(34·여) 선생님이다.
‘늦깎이 초등 1학년’이 된 할머니들은 6·25 전쟁과 가난 등의 사정으로 배움과는 연이 닿지 않았다. 전일옥 할머니는 9살 때 6·25 전쟁을 겪었다. 전쟁으로 부모님을 여의었고 혼자가 됐다. 혼자 살아가기에도 벅찼고 공부는 그림의 떡이었다. 그는 “읽고 쓰지 못해 여태 휴대전화를 사용하지 못하고 살아 왔다”며 “평생 학교 문턱에도 못 갔는데 이곳(교실)에 앉아 있는 것만으로도 감사하다”고 말했다.
박고이 할머니는 7남매를 졸업시킨 학교에 이제야 입학하게 됐다. 이곳엔 손자 2명도 ‘선배’로 재학 중이다. 그는 “남편을 일찍 잃고 혼자 7남매를 키우다보니 너무 고생스러워 죽고 싶을 때도 있었다”며 “하지만 그게 마음대로 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어 “각종 고지서가 나올 때마다 글을 못 읽어 이웃을 데리고 다니며 일을 보는 것이 너무 답답해 입학하게 됐다”고 말했다. 박경순 할머니도 “글을 제대로 읽지 못해 남들처럼 따라가지 못하는 등 불편이 컸다”고 말했다.
세 할머니는 배우고 싶다는 생각을 가족을 통해 학교에 전했고, 학교는 마을 노인회관으로 찾아가 할머니들의 의사를 확인한 뒤 입학을 추진했다. 학교 측은 이날 책가방과 화분, 장학금을 지급했다.
권용규 교장은 “신입생이 부족한 상황에서 할머니들의 입학으로 지역학교를 살릴 실마리가 마련됐다”며 “어르신들의 삶의 경험과 지혜가 학생들의 정서·인성 함양에도 도움이 될 수 있도록 돕겠다”고 말했다. 민병희 교육감은 “배움의 용기를 낸 세 분께 존경의 박수를 보낸다”며 “어르신과 손자가 함께하는 귀한 배움의 시간이 되기를 바란다”고 격려했다.
권중혁 기자 gree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