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메리카 퍼스트(미국 최우선)’를 강조해온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수입 철강에 25%의 관세를 부과하는 등의 ‘관세 폭탄’ 도입을 추진하며 무역전쟁의 방아쇠를 당겼다. 국내 인기를 확보해 오는 11월 중간선거에서 이기기 위한 포석으로 분석되지만 공화당은 오히려 ‘나쁜 좌파정책’이라는 표현까지 써가며 비난하고 있다. 중국은 물론 유럽과 캐나다 등 동맹국까지도 보복 대응에 나설 기세다.
트럼프 대통령은 1일(현지시간) 철강 및 알루미늄 회사 임원들을 백악관으로 초청한 자리에서 “다음 주 중 미국으로 들어오는 모든 외국산 철강에 25%, 알루미늄에는 10%의 관세를 부과하는 방안에 서명하겠다”고 밝혔다고 뉴욕타임스(NYT) 등이 보도했다.
트럼프는 “우리나라가 다른 나라들에 얼마나 나쁘게 대접받아왔는지 사람들은 모른다”며 “솔직히 그들(외국)은 우리 철강과 알루미늄 산업, 다른 업종까지도 파괴했다”고 말했다. 그는 기존 관세 정책을 ‘치욕스러운 것’이라고 묘사하며 “여러분은 처음으로 보호를 받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 자리에는 US스틸, 아르셀로미탈, 누코르, JW알루미늄, 센추리알루미늄 등 미국의 주요 철강 및 알루미늄 업체 경영진 10여명이 참석했다.
NYT는 새 관세 정책 도입으로 값싼 금속을 수출하는 중국뿐만 아니라 미군에 철강과 알루미늄을 공급하는 캐나다를 비롯한 동맹국에 대해서도 광범위한 관세가 부과될 것으로 전망했다.
트럼프의 이날 발표는 백악관 내부에서도 제대로 조율을 거치지 않은 채 나온 것으로 전해졌다. 법적 검토가 끝나지 않은 데다 관세율과 적용 국가에 대한 여러 방안이 여전히 논의되고 있다고 NYT는 전했다. 백악관 측은 트럼프가 기업인들과 면담하기 몇 시간 전까지도 “아무 발표도 나오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상원 지도부 역시 사전 설명을 듣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트럼프의 발언이 알려진 뒤 미국 내부에서는 철강·알루미늄 고관세 정책이 자동차 등의 부품 가격 인상과 제품 가격경쟁력 약화를 통해 미국 경제에 연쇄적으로 악영향을 끼칠 것이라는 지적이 쏟아지고 있다.
트럼프의 철강·알루미늄 고관세 정책은 오는 11월로 예정된 중간선거에서 이겨 재선 기반을 다지기 위한 인기 전략으로 분석된다. 지난 대선 당시 트럼프의 대표 지지층으로 꼽힌 ‘러스트벨트’(쇠락한 공업지역)의 백인 저소득 근로자 상당수가 관련 산업에 종사하고 있다. 러시아 스캔들 등으로 수세에 몰린 트럼프는 공화당이 다수당을 차지해야만 탄핵 압박에서 벗어날 수 있는 상황이다.
하지만 공화당조차 국내 경제 타격과 무역전쟁을 우려하며 트럼프와 각을 세우고 있다. 공화당 팻 투미 상원의원(펜실베이니아)은 “미국 소비자들에게 비용 증가를 초래하고 일자리에 타격을 줄 뿐만 아니라 다른 국가들로부터 보복을 자초하는 일”이라고 비판했다. 벤 새스 상원의원은 “이런 나쁜 정책은 좌파 정부에서나 예상되는 것”이라며 “공화당 정부에서는 아니다”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논란이 한창인 2일 이른 아침 트위터에 올린 글에서 “한 나라(미국)가 거의 모든 나라와의 무역 거래에서 수십억 달러를 잃고 있다면 무역전쟁은 좋은 것이고, 이기기도 쉽다”며 입장을 철회할 생각이 없음을 분명히 했다.
강창욱 기자 kcw@kmib.co.kr, 그래픽=전진이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