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일과시간 끝났다”며 치매노인 방치한 지자체·병원

입력 2018-03-02 20:10
삽화=전진이 기자

거리를 헤매던 독거 치매노인을 시민이 신고했지만 관할 지자체나 병원은 밤늦게까지 서로 책임을 미루며 노인을 돌보길 거부했다.

서울 영등포중앙지구대는 지난달 27일 오후 6시50분 치매노인 박모(80)씨가 횡단보도 앞에서 중심도 제대로 못 잡고 위태롭게 서있다는 신고를 접수해 그를 지구대로 데려왔다고 2일 밝혔다. 경찰이 신상정보를 물어도 의사소통이 전혀 안 됐다. 다리에 깁스를 해 거동이 불편한 상황에서 그는 몸을 벌벌 떨기만 했다.

박씨는 본인의 퇴원 의사에 따라 지난해 입원해 있었던 인천 서부의 한 요양병원에서 나와 영등포구의 한 여관에서 구조 당일까지 한 달여를 홀로 살고 있었다. 박씨는 친동생이 있지만 집안사정이 어려워 박씨를 돌볼 수 없었다. 사실상 무연고에 가까운 상태였다.

경찰은 밤이 깊어지기 전에 박씨를 안전한 곳으로 이송해야만 했다. 구호대상자를 경찰서에서 최대 24시간까지 보호할 수 있으나 밤이 깊을수록 사건이 많아지는 지구대 특성상 그를 보호하기에 적절치 않았다. 경찰은 영등포구청 당직실, 치매환자 보호센터 등 치매관련 기관에 연락했다. 그러나 돌아오는 답은 “근무시간이 끝나 일을 처리할 수 있는 사람이 없다”는 답변뿐이었다.

경찰은 관할지역 내 병원과 요양병원에도 박씨를 보호해달라고 요청했지만 거절당했다. 병원 측은 “치매환자가 외상을 입었거나 사람들에게 위해를 가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면 병원에 입원시킬 수 없다”고 답했다. 요양병원도 “박씨가 기초수급자고 동생이 있으니 받아줄 수 없다”며 인계를 거부했다.

영등포구청 관계자는 “박씨 주거가 일정치 않다는 것을 파악해 동주민센터에서 방문해 조치할 계획이 있었다”며 “저녁에 갑자기 사건이 일어나 담당 공무원들이 아닌 당직실 인원이 전화를 받았고 연계가 잘 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관할 지역 병원관계자는 “정확한 통화내용을 알 수 없으나 환자가 실제 문제가 있어 내원했다면 치료는 이뤄졌을 것”이라고 해명했다.

경찰은 박씨가 입원했던 병원을 겨우 찾아 자정에야 박씨를 병원에 인계할 수 있었다. 경찰 관계자는 “무연고 치매노인들에겐 밤이 더 위험한데 정작 그 시간대 치매노인을 보호할 수 있는 기관이 없다는 게 의문”이라고 말했다.

경찰관직무집행법은 ‘미아·병자·부상자가 적당한 보호자가 없고 응급구호가 필요할 경우 보건의료기관이나 공공구호기관에 긴급구호를 요청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긴급구호를 요청받은 보건의료기관이나 공공구호기관은 정당한 이유 없이 긴급구호를 거절할 수 없다. 하지만 박씨와 같은 치매 노인의 경우 응급구호 대상인지 명확지 않다. 법의 사각지대에 놓인 셈이다.

경찰청 통계에 따르면 실종치매환자는 2014년 8207명에서 2017년 1만308명으로 매년 증가하고 있다. 중앙치매센터 관계자는 “밤에 이분들을 보호할 수 있는 시설과 구체적인 절차가 없다”며 “확실한 업무 분담이 이뤄지지 않다 보니 기관 간 서로 떠넘기기를 하는 상황이 많이 발생한다”고 설명했다.

이형민 심우삼 기자 gilel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