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한킴벌리 ‘리니언시 갑질’의 진실

입력 2018-03-03 12:13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이 지난달 12일 정부세종청사에서 가습기 살균제 재조사 사건에 대한 브리핑을 하고 있다. 공정위는 이 사건에서도 이름만 같을 뿐 전혀 상관이 없는 회사를 검찰에 고발하는 실수를 저질렀다.

“기소는 했지만 무죄를 판결해주시기 바랍니다.”
이렇게 말하는 검사는 세상 어디에도 없다. 하지만 스스로 ‘경제검찰’이라는 공정거래위원회에서는 존재한다. 공정위는 지난달 영세한 대리점을 앞세워 정부와 공공기관이 발주한 위생용품을 담합한 유한킴벌리에 대한 제재 심의를 진행했다. 3일 자유한국당 김선동 의원실이 공정위로부터 제출받은 이 사건 속기록을 보면 ‘검사’ 격인 심사관과 ‘판사’ 격인 공정위위 원 간에 ‘황당한’ 대화가 오간 것을 알 수 있다. 이 사건을 조사한 공정위 심사관은 담합을 주도한 유한킴벌리 실무자 5명에 대한 검찰 고발 의견을 심사보고서에 적시했지만, 정작 심판정에서는 “선처를 바란다”며 고발 면제 결정을 내려달라고 간청했다.
지금도 ‘리니언시(담합 자진신고) 갑질’을 한 유한킴벌리 실무자에 대한 검찰 고발 면제를 두고 검찰과 공정거래위원회는 서로 다른 목소리를 내고 있다. 담합을 가장 먼저 신고한 업체에 과징금과 검찰고발을 면제하는 리니언시 제도의 특성 상 법인 뿐 개인 고발도 면제하는 것이 당연하다는 게 공정위의 입장이고, 검찰은 공정위가 규정에도 없는 담합 주도 실무자에 면죄부를 줘놓고 보도자료 상에는 검찰에 이들을 고발 요청했다는 허위사실을 유포했다며 반발하고 있다. 무엇이 진실일까. 단초는 이 사건의 심판정 현장에서 찾을 수 있다.

눈물흘리는 영세대리점주 앞에두고 유한킴벌리 감싸는 심사관
1심 재판부 격인 공정위 소위원회 심판정에서 영세 대리점주는 눈물로 하소연했다. 본사가 시키는 대로 입찰한 죄밖에 없는데 유한킴벌리는 쏙 빠지고 자신들만 처벌받게 됐다는 것이었다. 유한킴벌리는 10여년 간 영세한 대리점을 앞세워 정부와 공공기관이 발주한 위생용품 담합을 주도했다. 그러나 감사원이 조달청 감사에서 담합 혐의를 포착하자 대리점에 통보 없이 담합을 자수했다. 1순위로 리니언시를 하면 검찰고발과 과징금이 면제된다는 점을 이용한 것이다. 그 결과 유한킴벌리는 과징금을 100% 면제받은 반면 본사가 하라는 대로 한 영세한 대리점들만 처벌을 받게 됐다.
소위원회 위원들은 격앙했다. 한 위원은 “유한킴벌리가 좋은 회사인줄 알았는데 포장만 잘 된 회사였다”고 했고, 다른 위원은 “대리점들에게 어떤 피해라도 간다면 직을 걸고 가만히 안 있을 것”이라고 했다. 주심 위원은 눈물까지 보였다.
그런데 이 와중에 이상한 상황이 벌어졌다. 공정위 심사관이 유한킴벌리 실무자에 대한 검찰고발 의견을 심사보고서(공소장 격)에 적시했으면서 정작 심판정에서는 고발을 하지 말아달라고 위원들에게 요청한 것이다.
지금까지 공정위 조사 관행상 리니언시를 한 업체 실무자는 아예 심사보고서 상에서 고발 의견을 넣지 않았다. 고발대상은 주로 법인이었고, 개인고발이 들어갈 경우는 대표이사 정도만 넣었다가 리니언시를 이유로 고발을 면제시켜줬다. 그 이유는 현행 공정위 리니언시 고시는 고발 면제 대상을 ‘사업자’로만 명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법인이나 대표이사는 사업자로 볼 수 있지만 부장, 과장 등 실무자는 사업자로 볼 수 없다.
하지만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이 취임한 이후 불공정행위를 저지른 실무자에 대한 검찰 고발을 강화하겠다고 밝히면서 사정이 바뀌었다. 내부적으로 김 위원장 지시사항에 따라 심사관들은 리니언시 업체 소속 실무자라도 일단 고발을 하는 것으로 방향을 튼 것이다.
이렇게 고발은 했지만 면제 규정에 실무자는 포함되지 않았으니 판사 격인 위원들에게 “우리는 고발의견을 못 빼니 위원님들이 알아서 빼 달라”고 호소하게 된 것이다.
결국 소위원회 위원들은 명확한 규정이 없음에도 관행상 유한킴벌리 실무자들에게 고발 면제 결정을 내리게 된다.

격앙된 검찰 VS “문제없다”면서도 뒤로는 제도 손질하는 공정위
이를 지켜보는 검찰은 격앙됐다. 보도자료에는 유한킴벌리 실무자를 검찰에 고발요청 했다고 적시해놓고 실제로는 안하면 욕은 다 검찰이 먹는 것 아니냐는 것이다. 공정거래법 사건은 공정위가 고발요청을 해야만 기소가 가능한 전속고발권 사건이다. 공정위가 알아서 면죄부를 줘버리면 검찰이 조사를 하고 싶어도 할 수 없다.
검찰은 리니언시 규정의 모호함도 지적한다. 리니언시 고시 상 검찰고발 면제 대상은 ‘사업자’인데 실무자가 사업자가 아니지 않느냐는 것이다.
이에 대해 공정위는 공정거래법 상 고발면제 대상에 ‘리니언시를 한 자’로 되어있기 때문에 하위규정인 리니언시 고시와 상관없이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과연 그럴까. 공정거래법 전문가들은 이에 대해 반론을 제시하는 경우가 많다. 공정위 출신의 고려대 법학대학원 이황 교수는 “리니언시 고시의 법적 성격이 문제”라면서 “고시형식의 행정규칙 중에서도 법규적 효력이 있는 법령 보충적 행정규칙이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리니언시 고시가 만약 법규적 효력이 있다고 판단이 되면 공정위가 실무자 고발을 면제해주는 것은 불법이 되고 공정위 스스로 큰 문제가 생기는 것”이라고 말했다.
공정위가 뒤늦게 사업자 뿐 아니라 실무자도 고발을 면제를 할 수 있도록 리니언시 고시를 개정하는 방안을 검토 중인 것도 리니언시 고시가 법령 보충적 행정규칙으로 볼 수 있다는 우려를 반영한 것이다. 겉으로는 아무 문제없다고 하면서도 뒤로는 고시 개정을 준비하는 이유다.

공정위 전속고발권 가질 자격되나
유한킴벌리 소위원회 심판정에서 위원과 심사관의 대화 내용을 듣고 있으면 과연 전속고발권능)을 계속 공정위가 줘야 하는가 라는 의문이 생긴다. 문재인 대통령은 전속고발권 폐지를 공약으로 내세웠지만 공정위는 검찰과의 추가 논의가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아래는 유한킴벌리 실무자 고발면제에 대한 속기록 대화내용이다. 이를 읽어보면 전속고발권 폐지에 대한 답은 나올 것이다.

이하는 속기록 대화 내용.
심사관)저희가 그동안 실무 관행상 조사협조자에 대해서는 원칙적으로 고발을 안 했습니다. 그런데 그 이후 김상조 위원장이 오셔 가지고 고발 부분에 대해서 좀 적극적으로 하자(했다.) 그래서 저희가 개인고발에 대해서 좀 적극적으로 조사협조에 관계없이 했다. 기존 기준에 의하면 사실상 조사협조자로서 저희가 개인고발은 안 했을 텐데….
위원) 심사관 의견이 조금 본 위원의 입장에서 받아들이기가 어려운 게 본 위원의 재임기간 중에 지금 위원장님이 오셨고 지침기준 또한 본 위원이 재임하는 기간 동안에 바뀌었다면 바뀐 것인데 제가 아는 한 본 위원이 아는 한 그 어디에도 조사협조자에 대해서도 고발한다는 것은 저는 알지 못하는데요. 적극적인 고발을 하라는 것이 조사협조자에 대해서도 고발을 하라는 게 아니잖아요.
심사관)위원회에서 판단해 주심이..
위원) 아니 심사관, 심사관, 다시 이야기를 할게요. 다시 이야기 할게요. 심사관 단계에서 조치의견에 고발의견을 포함시킬 수 있어요. 그런데 그 포함 여부를 결정함에 있어서 ‘조사협조라고 하는 부분이 전제가 된다면 고발 대상자라 하더라도 고발하지 않는다’ 라고 하는 것은 지금까지의 관행이었는데 심사관은 그것을 다르게 지금 해석을 했고 다르게 이해를 했고 조사협조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고발대상으로 넣었다, 지금 그 이야기를 하고 있는 거잖아요. 그렇잖아요?
심사관)예. 지금 그렇게 말씀을 드렸는데 말씀하시는 것처럼 그렇게 법제도상은 위원님 말씀대로 그렇게 지금 되어있습니다.
위원) 그러면 다시 돌아가서 심사관의 오인에 의한 시정조치에 고발대상으로 들어간 것이고 그렇죠? 조사협조 했습니까? 그 부분 어떻습니까?
심사관) 예, 했습니다.
위원) 충분하게 조사협조를 했습니까?
(심사관들) 예.
위원) 그리고 그 이전에 이 고발, 기존의 관행에 비추어볼 때 이게 고발대상입니까? 아닙니까?
심사관) 저는 당초에 고발대상이라고 생각하지 않아서 사실은 이게 좀 바뀐 부분이 있습니다.
위원)좋습니다. 그러면 지금 바꾸겠습니다. 심사관이 조치의견을 철회할 용의가 있습니까? 심사관 조치의견 여기에서 철회할 수 있습니다. 개인고발 철회 하겠습니까?
심사관)위원회에서 판단을 좀 해주셨으면….
위원) 아니 심사관, 심사관의 의견을 물었어요. 조치의견 철회할 의향이 있는지요.
심사관) 저희가 고발지침 개정을 지금 준비하고 있는데요. 조사협조자….
위원)아직 안 되었잖아요. 지침이, 개정이 안 되었잖아요.
심사관)그래서 그 부분에 명확한 규정이 없어서….
위원) 그리고 조사협조 했습니까?
심사관)예, 했습니다.
위원) 그러면 고발대상입니까, 아닙니까?
심사관)조사협조 부분에 대한 명확한 규정이 없습니다.
위원) 고려해달라고 하면서 지금 조치의견을 빼지 못하겠다고 하는 건 또 뭡니까? 소신대로 하세요. 그러면 심사관 조치의견에서 빼세요. 빼시겠습니까?
심사관)아닙니다. 저희들이 심사관에서 지금 이렇게…. 저희는 원칙에 충실할 수밖에 없는 사항이고요. 일단 고발점수 이상이 되기 때문에 거기에 따라서 저희 심사관은 의견을 그렇게 가지고 가야 될 것으로 생각합니다.

이성규 기자 zhibag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