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왱]응급구조사, 응급환자 살리면 불법?…이상한 업무규정

입력 2018-02-28 18:04



응급구조사, 의료행위 14개만 합법…현장에선 240가지 필요
자격증 딸 때 ’심전도 검사’ 시험봐, 하지만 현장에선 불법

응급차에 탄 위급한 산모! 구급대원이 아이를 받아도 될까요? 그냥 받는 건 상관없지만 원활한 분만을 위한 약물을 사용하면 안 됩니다. 심근경색으로 쓰러진 노인! 응급구조사가 심전도 검사를 해도 될까요? 실제로 위급 상황에 따른 조치로 심전도 검사를 했다가 보건소에 신고 돼 경고조치를 받은 사례가 있습니다. 반복되면 병원영업정지까지 가능하죠.



현장에서 이뤄지는 의료조치는 240가지가 넘는데 응급구조사가 법적으로 할 수 있는 일은 14가지뿐. 법을 지켜서는 사람을 살리기 힘들다는 겁니다.

(정민호(가명) A 대학병원 응급구조사)
“응급실이 과부하 돼서 간호사가 바쁘고 의사가 바빠도 해줄 수 있는 게 없거든요. 분명 배워서 환자에게 뭘 해줘야 할지 알고 다 경험 했던 부분인데…”

대학병원 5년차 응급구조사 정민호(가명·29)씨는 법 때문에 눈앞의 응급환자를 속수무책으로 바라만 봐야 합니다.

(정민호(가명) A 대학병원 응급구조사)
“보통 흉통·심근경색 환자들이 있으면 당연히 심전도 검사를 해야 하는데 저희가 (법적으로) 찍을 수가 없으니까 응급구조사들이 심전도를 그 환자한테 가져가서 팔‧다리‧가슴 부착해놓고 버튼을 누르는 건 의사를 불러서 누르게 해라. 그럼 너희가 찍는 게 아니지 않느냐. 나름대로 편법이랍시고…”

응급구조사의 심전도 검사가 불법이라 이들은 세팅을 해놓고 소리 질러 의사를 부릅니다. 의사는 버튼만 누르러 뛰어오죠. 한시가 급한 응급환자에겐 엄청난 시간낭비입니다.

더 황당한 건 국가자격시험인 응급구조사 자격시험에 심전도 검사 과목이 있다는 겁니다. 현직 응급구조사가 받는 보수교육에도 들어있습니다.



(정민호(가명) A 대학병원 응급구조사)
“(대학) 커리큘럼상 심전도를 배우는 과정이 있고요. 보수교육 과정에도 강의가 있고 국가고시 과목엔 실기과목으로 포함되어있고 시험 필기과목으로 시험까지도 치고 있고. 교육만 하고 받기만 하면 뭐하냐고요. (심전도) 찍으면 불법인데.”

법 때문에 생긴 이상한 일이 또 있습니다. 응급구조사가 환자에게 주사바늘을 찌르는 건 합법인데 채혈하려고 빼는 건 불법이랍니다.

(정민호(가명) A 대학병원 응급구조사)
“(합법적으로) 정맥로 통해서 피를 확보하는데 채혈은 불법이다. 정맥로 확보를 우리가 해놓고 채혈은 다른 사람이 찔러서 또 해야 하니까. 환자한테는 (같은 곳을) 두 번 찔러야하는 그런 불합리한 모순적인 부분이라고 할까.”

이런 상황 때문에 병원에서는 응급구조사에게 간호조무사 자격증을 따라는 부당한 요구가 이뤄집니다. 학원비도 주지 않고서 말이죠.



(김민성(가명) 전 B 대학병원 응급구조사)
“간호부장님이 ‘간호조무사 자격이 있어야 우리도 법적으로 안 걸린다’ 간호조무사보다 더 많이 배우고 더 돈을 많이 들여서 졸업을 하고 나왔는데 법 몇 글자 때문에 못한다는 게 너무 어이가 없습니다.”

법에 업무범위로 명시된 게 응급구조사는 14개뿐인데 간호조무사는 진료보조로 포괄적이기 때문입니다.



(김건남 병원응급구조사협회장)
“만약에 심정지 환자를 만났어요. 심폐소생술 하면서 전기충격 주면서 병원 이송해야겠죠. 그런데 심정지 환자에게 사용하는 약물 몇 가지가 있어요. 보편적으로 사용하는 약입니다. 업무 규정에 안 들어가 있기 때문에 못 쓰는 거예요 국민들을 기만하는 행위죠”

보건복지부는 지난해 국정감사에서 이런 문제를 고치기 위해 법 개정을 적극 검토하겠다고 했지만 실상 간호사·간호조무사 등 타 직역의 눈치를 보고 있습니다.



(보건복지부 관계자)
“간호사나 간호조무사나 이런 직역도 있으니까 좀 더 다른 직역과의 관계까지 고려해서 추가적으로 검토가 필요한 사항이거든요”

복지부는 올해 응급구조사 업무범위 관련 연구용역을 진행할 계획이지만 법 개정에 나설지 여부에 대해서는 유보적인 입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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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승혁 기자 marquez@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