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정부가 유엔인권이사회 기조연설에서 “위안부 강제연행은 입증되지 않았다”며 “‘성노예’라는 표현도 사실과 다르므로 사용해선 안 된다”고 밝혔다. 강경화 외교부 장관은 같은 연설에 일본 측 보다 앞선 순서로 나와 “한·일 위안부 합의에 피해자 중심의 접근이 결여돼 있다”고 했다.
호리이 마나부 외무정무관은 27일(현지시각)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리고 있는 제37차 유엔인권이사회 총회에서 “(위안부 문제는) 한국과 일본의 합의로 해결이 끝났다”며 “군과 정부에 의한 위안부 강제연행은 확인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호리이 외무정무관은 또 “일본 정부는 한·일 간 위안부 문제가 정치·외교적 문제가 된 1990년대 초 이후 위안부 문제에 관한 본격적인 조사를 했다”며 “입수한 자료에서 강제 연행에 대한 기록을 찾아볼 수 없었다”고 말했다. 이어 “위안부가 강제로 끌려왔다는 견해는 고(故) 요시다 세이지가 허위 사실을 날조해 유포한 것”이라고 덧붙였다.
요시다 세이지는 1982년 아사히신문과 인터뷰에서 위안부 문제에 관련해 허위 증언을 한 사람이다. 그는 일제강점기 당시 자신이 군부대를 이끌고 제주도에서 200여명의 여성을 강제 징병해 위안부로 삼았다고 진술했다. 하지만 제주도 자체조사 결과 이는 거짓말인 것으로 드러났다. 본인도 후에 “사실이 아니었다”라고 인정했다. 호리이 외무정무관의 주장은 요시다가 거짓말을 했으므로 위안부에 대한 다른 증언 역시 사실이 아니라는 셈이다.
호리이 외무정무관은 정현백 여성가족부 장관이 22일 제네바에서 열리 유엔 여성차별철폐협약(CEDAW) 심의에서 위안부 대신 성노예라는 표현을 사용한 것에 대해서도 반박했다. 그는 “일본은 성노예라는 표현이 사실과 다르기 때문에 사용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며 “이 부분은 한·일 합의 때 한국 측도 동의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호리이 외무정무관이 말한 합의는 2015년 12월 28일 박근혜 정부 당시 한국과 일본이 위안부 문제에 대해 합의한 체결이다. 당시 양국 정부는 ‘성노예 표현 사용 불가’ ‘해외 소녀상 건립 지원 중단’ 등을 공식 또는 비공식적으로 합의했다. 하지만 문재인 정부는 ‘한·일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문제 합의 검토 태스크포스(TF)’ 조사 결과가 나온 뒤인 지난해 12월 28일 입장문을 내고 “이 합의로 위안부 문제가 해결될 수 없는 점을 분명히 밝힌다”고 강조했다.
호리이 외무정무관은 “(위안부 합의는) 국가와 국가의 약속”이라며 “정권이 바뀌어도 책임을 갖고 실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한일 양국은 유엔 등 국제사회에서 위안부 문제에 대해 상호 비난·비판하는 것을 자제하기로 했다”며 유엔 인권위에서 위안부 관련 언급을 한 강 장관을 비판했다.
앞서 서울시와 서울대 인권센터는 27일 열린 ‘한·중·일 일본군 위안부 국제콘퍼런스’에서 일본군에게 살해된 위안부의 시신이 쌓여있는 영상을 공개했다. 영상을 발굴한 서울대 인권센터 정진성 교수 연구팀의 박정애 동국대 연구교수는 “과거 공개된 자료를 살펴봤을 때 영상에 등장한 시신들이 조선인 위안부의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일본군의 위안부 학살 영상 증거가 공개된 것은 처음이다.
박은주 기자 wn1247@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