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호분의 아이들 세상] 무조건 “NO”라고 말하는 아이

입력 2018-02-27 15:36

‘자율이냐, 통제냐’

어느 정도까지 아이에게 허용하고, 어느 선에서 통제할 것인가? 아이를 양육하는 부모들이 매 순간 직면하는 갈등이다. 이는 학자들 사이에서는 논란이 될 만큼 쉽지 않은 문제이기도하다.

“밥 먹어야지”- “싫어”
“치카 치카 하자” - “안해“

P는 지난해까지는 순하고 너무 예쁜 아들이었다. 4살이 되면서 부쩍 말을 안 듣고 “싫어”라는 말이 늘 먼저 나온다고 했다. 남동생을 최근에 낳은 엄마는 동생을 돌보느라 바쁜데다 P마저 말을 듣지 않으니 거의 매일 언성을 높이게 되어 목이 쉴 정도이다. 몸이 열이라도 두 아들을 돌보기에는 힘이 부쳐 짜증을 내게 되고 그런 날이면 스스로 ‘나쁜 엄마’라는 자책감에 시달린다.

그러나 막상 아이와 지내다 보면 ‘이 녀석이 일부러 저러는 건가? 엄마를 약 올리는 건가?’ 하는 의구심이 들면서 화가 난다. ‘저렇게 하다가 사춘기가 되면 반항이 더 심해지고 비행청소년이 되면 어쩌나, 또 뉴스에 나오는 사이코 패스 성인이 되면 어쩌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되면 걱정이 앞서는 등 만감이 든다고 하였다. 이러니 당연히 엄마의 태도도 오락가락 하게 되고 일관성을 잃게 된다며 전문가를 찾았다.

아이가 발달과정에서 이런 행동을 보이는 것은 정체성과 자아가 형성되기 때문이다. 3살 이전 까지는 정상적인 발달 과정으로 볼 수 있다. 하지만 독립된 자아로 성장하는 것이 그리 간단한 일만은 아니다. 한동안은 오락가락 하는 시기를 겪는다. 부모를 거부하고 지시를 따르지 않고, 뭐든 제 마음대로만 하려하며 멀리 도망갔다가 불안해지면 다시 엄마에게 돌아와 안심을 구하고 의존하고 애착을 추구하고.... 이런 오락가락 행동을 한동안 하면서 아이들은 드디어 자기 정체성을 찾고 자율성을 찾는다. 제 1 독립선언이다. 물론 제2의 독립선언이 남아 있다. 사춘기이다. 두 시기 모두 인간이 자율성을 추구하는데 매우 중요한 시기이지만 부모에게는 시련의 시기이다.

제1의 독립선언은 24개월을 전후해서 일어난다. 이전의 모든 아이들은 엄마와 너무나 밀착되어 있고, 엄마에 대한 의존 정도가 상당히 크기 때문에 자기만의 고유성을 지닌 존재임을 알지 못하고, 물리적 심리적으로 엄마와 공생 상태다. 돌 무렵 아이가 스스로 걷기 시작하고 자신의 몸을 스스로 조절할 수 있을 때 부모로부터 물리적으로 멀리 벗어날 수 있으면서 독립은 시작된다. 하지만 부모가 이런 공생 상태에서 벗어나려는 아이의 시도를 무시하거나 억압하려고 하거나 부모가 불안하여 아이와의 거리를 인정하지 못하면 아이는 독립하지 못한다. 그렇다해서 순종하기만 하는 것은 아니고 끊임없이 자율성 획득을 위한 몸부림을 하게 된다. 이것이 무조건 “싫어” “안해”하는 등의 거부 행동으로 나타나고 분리 개별화의 과정이 원활하지 않을 때 반항적인 행동까지 강하게 나타난다.

아이는 “No”라고 말하면서 엄마와 분리된 개별성을 지닌 자신의 존재를 확인하는 것이다. 엄마와 나는 서로 분리된 존재라는 것을 느끼는 과정이다. 그러므로 시행착오와 실수가 있더라도 이런 시도들은 존중받아 마땅하다.

하지만 이 시기에 부모들은 하나의 딜레마를 겪는다. “No”라는 거부행동을 어디까지 허용할 것인가의 문제다. 무한정 무조건 허용할 수는 없다. 이 시기의 아이들은 자율성을 위한 시도를 하지만 동시에 자신의 한계도 배워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원칙은 있다. 아이의 연령, 발달 단계를 고려해야 한다. 분리 독립의 시기에는 아이가 위험하거나 상식적으로 문제가 되지 않는 선에서는 허용한다. 아이의 주장을 어느 정도는 존중해 준다. 하지만 위험의 문제가 발생하거나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는 등 선을 넘는 행동에 대한 훈육이 동시에 이루어져야 한다. 단호하게! 단호함이란 화를 내고 야단을 치거나 위협하는 행동과는 구별해야 한다. 분명한 선이 있다는 확신감을 갖고 일관되게 목소리를 낮추고 엄격하게 짧게 이루어져야 한다.

이호분(연세누리 정신과, 소아청소년 정신과 전문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