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硏 “한미훈련 재개 이전 3월 중 평양에 특사 보내야”

입력 2018-02-27 14:42

세종연구소 통일전략연구실은 27일 김영철 통일전선부장을 비롯한 북한 대표단 방남과 관련해 “남북한 고위 인사들이 2박3일간 머리를 맞대고 진지하게 논의하고도 공동 합의문이나 상세한 보도자료를 발표하지 못한 것은 그만큼 양측이 매우 민감한 주제들을 다루었고 핵심 문제에 이견이 아직 충분히 좁혀지지 않았다는 의미”라고 해석했다.

정성장 통일전략연구실장은 “과거에 북한은 핵과 미사일 문제를 결코 협상 테이블에 올리지 않겠다고 대외적으로 선언했다”며 “이번 남북 고위급 접촉에서 비핵화와 북미대화 문제를 진지하게 논의했다면 이는 상당히 중요한 태도 변화”라고 평가했다. 또 “남북 고위급 접촉에서 과거 금기시됐던 주제들을 다룬 것만으로도 이번 김영철 통전부장의 방남은 큰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정 실장은 “이 같은 허심탄회한 대화가 앞으로 지속되기 위해서도 이제는 한국 정부가 북한에 고위급 대표단과 특사를 파견해 후속 대화를 이어가야 한다”고 제안했다. 그는 ‘북한행’에 가장 적절한 시점으로 3월을 꼽았다.

정 실장은 “4월에 한미연합군사훈련이 재개되기 전, 즉 3월 중에는 한국 정부가 북한에 고위급 대표단이나 특사를 파견해 김정은을 만나고 북한의 새로운 입장을 더 정확히 파악하며 남북 이견을 더욱 좁혀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영철 통전부장은 이날 북으로 돌아가면서도 공개적 발언은 한마디도 내놓지 않았다. 경기도 파주 남북출입사무소(CIQ)를 통과하는 마지막 순간까지 김영철은 취재진에게 입을 열지 않았다. 25일 오전 10시쯤 CIQ를 지나 남한 땅에 발을 디딘 후 27일 낮 12시쯤 다시 CIQ를 거쳐 돌아갈 때까지 74시간 동안, 김영철 부장을 맞이하고 회담한 정부 인사들 제외하곤 그의 목소리를 듣지 못했다.

김영철 일행은 27일 오전 11시35분쯤 승용차편으로 CIQ에 도착했다. 25일 내려올 때 탔던 것과 같은 제네시스 차량이었다. “방남 결과는 만족스러운가?” “소감 한마디 해 달라” “북미 대화는 언제쯤으로 생각하고 있나?” “미국과의 대화에 선행조건이 있는가?” 등 취재진의 질문이 쏟아졌지만 김영철 부장은 전혀 답변하지 않았다. 취재진과 시선도 마주치지 않았다.

김영철 일행은 바로 접견실로 들어갔고, 최강일 조봄순 등은 접견실 밖에서 잠시 대기했다. 취재진이 조봄순에게 “외무성에서 나온 건가?” 묻자 그는 질문한 기자를 빤히 쳐다보며 활짝 웃었다. 최강일에게 “혹시 미국과 비공개 접촉을 했나?” “이번 방남에 어떤 성과가 있었나?” “미국과 비공개 접촉했다는 보도가 나온다” 등의 질문을 던졌지만 그 역시 취재진을 등지고 선 채 묵묵부답으로 일관했다.

오전 11시45분쯤 김영철 부장이 접견실에서 나왔고 역시 질문이 쏟아졌다. “방남 결과를 어떻게 평가하나” “북미 대화는 언제쯤 될 거라고 생각하나” 등을 물었고, 그는 질문에는 답하지 않은 채 손을 한 번 들어 올린 뒤 웃으면서 출경장으로 나갔다.

정부 당국자는 “출경장에서 남북 당국자들이 악수하며 서로 ‘고생하셨다’고 인사를 나눴다”고 전했다. 북한 대표단은 오전 11시55분 CIQ를 출발해 낮 12시 군사분계선을 통과했다.

김영철 부장은 남한 땅에서 74시간을 머물렀다. CIQ로 입경해 서울 워커힐호텔에 여장을 풀고 강원도 평창에서 가서 문재인 대통령을 만났다. 평창올림픽 폐막식에 참석한 뒤 밤 늦게 서울로 왔고 이후 떠나는 날까지 줄곧 워커힐호텔에만 있었다. 여러 행사장과 경기장에 모습을 드러냈던 김여정 제1부부장과 완전히 다른 행보였다.

김영철의 모습이 언론 카메라에 잡힌 건 입경 장면, 평창 폐막식, 그리고 출경 장면이 거의 전부였다. 모든 회담은 통제와 보안이 가능한 워커힐호텔 안에서만 이뤄졌다. 워커힐에서는 2박3일 동안 마치 ‘판문점’처럼 남과 북의 회담이 시작됐다가 중단되고 다시 시작되는 상황이 되풀이됐다. 그동안 김영철 부장의 발언은 정부의 ‘짧막한’ 브리핑을 통해서만 간접적으로 전달됐다.

태원준 기자 wjta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