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는 아이가 ‘흑인’이라는 이유로 차별을 받지는 않을까 늘 걱정이었습니다. 세상이 많이 바뀌었다고는 하나 그래도 노심초사입니다.
미국 텍사스주에 사는 초등학교 교사이자 세 아이의 엄마 타나이 버나드는 최근 페이스북에 10살 막내아들과 나눈 대화를 적었습니다.
아이를 학교에 데려다주던 엄마는 불현듯 최근 플로리다주 파크랜드의 고등학교 총기난사 사건이 떠올랐습니다. 그래서 아이에게 “총격대피 훈련을 받았느냐”고 물었습니다.
아이는 “누가 총을 쏜다면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연습한 걸 말하는 거냐”고 묻더니 의기양양하게 “당연히 했다”고 답했습니다. 그래도 불안한 엄마는 아이에게 “어떻게 배웠는지” 물어보았습니다. 아이는 신이 나서 대화를 이어갔습니다.
“선생님이 교실 문을 잠그면 검은색 종이로 창문을 가려야 해! 그러고 나면 내가 책상을 문쪽으로 밀 거야! 친구들은 내 뒤에 숨어서 총을 피하는 거지!”
엄마는 순간 아찔해졌습니다.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떠오르지 않았습니다. 아이의 반 학생은 모두 23명. 그 중 흑인은 아들 데즈를 포함해 2명뿐이었습니다. 왜 자신의 아이가 흑인이라는 이유로 아이들의 방패막이가 되어야 하는지 서럽기만 했습니다. 하지만 아이가 상처받을까봐 표현할 수는 없었지요.
엄마는 차분하게 “누가 너보고 맨 앞에 서라고 한 거냐”고 물었습니다. 아이는 “아무도 앞에 서라고 하지 않았다”고 답했습니다. 엄마는 다시 “그런데 왜 네가 맨 앞에 선 거냐”고 물었습니다. 아이는 엄마를 이해할 수 없다는 듯 답했습니다. “내가 하겠다고 한 거야. 그게 왜?”
아이는 무심하게 말을 이어갔습니다. “친구들 모두 죽고 나만 살아남는 것보다 차라리 친구들을 지키고 내가 죽는 게 나아.”
엄마는 놀랐습니다. 한편으론 부끄러웠다고 합니다. 아이가 언제 이렇게 컸는지, 아이에게 친구들이 얼마나 소중한지 엄마는 차마 가늠할 수 없었습니다. 말문이 막혀 아들의 손을 잡은 채 아무 말없이 걷기만 했습니다.
네가 따돌림을 당했을까봐 걱정했다고, 네 친구들을 오해해 미안하다고, 생각보다 세상은 더 따뜻한 것 같다고 말해주고 싶었지만 입이 떨어지질 않았습니다. 백마디 말 대신 엄마는 아이의 손을 꼬옥 잡았습니다. 아마 아이는 엄마 마음을 다 읽었을 겁니다.
[아직 살만한 세상]은 점점 각박해지는 세상에 희망과 믿음을 주는 이들의 이야기입니다. 힘들고 지칠 때 아직 살만한 세상을 만들어가는 ‘아살세’ 사람들의 목소리를 들어보세요. 따뜻한 세상을 꿈꾸는 독자 여러분의 제보를 기다립니다.
박민지 기자 pmj@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