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사하구에 사는 최정아(47)씨는 누구보다 강인한 엄마입니다. 어려운 가정환경 속에서 홀로 두 남매를 키웠고 그러던 중 갑상선암 3기 판정까지 받았습니다. 아들, 딸은 이제 성인이 됐지만 최씨의 마음 한구석에는 아이들을 제대로 보살피지 못했다는 미안함이 있습니다.
최씨는 고맙게도 바르게 자라 준 아이들을 바라보다 문득 펜을 들어 글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김석준 부산교육감에게 보내는 편지였습니다. “아이들이 밝은 교육을 받고, 바르게 자랄 수 있게 해주셔서 감사하다”는 인사말로 시작된 편지는 이내 6장을 꽉 채웠습니다.
최씨는 아이들이 거쳐 온 초·중·고교와 선생님들의 이름을 차례대로 편지에 써내려갔습니다. 그리고는 “칭찬으로 우리 아이들을 힘내게 해주시고 자존감을 높여 준 학교와 선생님들께 칭찬 한마디 해 주십시오”라고 김 교육감에게 부탁했습니다. 아이들이 가난 속에서 바르게 자란 것을 선생님들의 공로로 돌린 겁니다.
그중에는 최씨가 특히 고마움을 표한 선생님도 있었습니다. 2010년 아들 손준혁군의 담임이었던 강재창 선생님입니다. 강 교사는 어린 준혁군에게 늘 “넌 꼭 잘 될거야”라는 말을 건네며 자신감을 심어줬습니다. 준혁군이 행여나 어려운 가정형편으로 인해 꿈을 포기할까봐 “희망을 버리지 말라”는 격려도 아끼지 않았습니다.
한 번은 이런 일도 있었습니다. 학교를 다녀온 아들이 부반장에 당선됐다는 경사를 전해왔던 날입니다. 최씨는 걱정이 앞섰습니다. 가난 때문이었습니다. 최씨는 강 교사를 찾아가 사정을 털어놓고 아들의 부반장 자리를 양보하겠고 말했습니다. 그때 강 교사는 최씨에게 따뜻한 말을 건넸습니다.
“준혁 어머니, 부반장 자리는 가정 형편과 전혀 상관없습니다. 걱정 마세요.”
그 이후로도 강 교사는 최씨에게 준혁군의 학교생활 소식을 전해줬다고 합니다. 준혁군에 대한 칭찬도 아끼지 않았고요. 덕분에 혹여 아이들이 삐뚤어지지 않을까 걱정을 달고 살았던 최씨는 안심할 수 있었습니다.
준혁군에게 하늘과도 같은 ‘스승의 은혜’를 베푼 강 교사는 지금도 몸이 불편하거나 가정형편이 좋지 않은 제자들을 위해 힘쓰고 있다고 합니다. ‘부산의 페스탈로치’라는 별명까지 있다고 하네요. 페스탈로치는 평생을 아동교육에 힘쓴 18세기 위인이죠. 근대교육의 아버지라고 불리기도 합니다.
최씨는 편지의 마지막 장을 통해 아이들의 소식도 전했습니다. 준혁군은 이제 20살이 돼 대학에 입학했고 딸 예진양도 어엿한 성인이 됐다고 합니다. 다행스럽게 최씨의 건강도 호전돼 공장일을 시작한다는 근황도 알렸습니다.
최씨는 “아이들의 어린 시절, 선생님 말씀 하나하나가 기초가 되고 뿌리가 돼 이렇게 잘 컸다”며 “저는 그렇게 고마우신 선생님들께 고맙다고 인사 한 번 제대로 못했다”고 미안해 했습니다. 아울러 “참 선생님이 얼마나 많은지 알리고 싶다”고 덧붙이기도 했습니다.
편지를 받은 김 교육감은 최씨와 준혁군, 강 교사가 만날 수 있는 자리를 마련했습니다. 세 사람은 28일 낮 12시 교육감실에서 식사하며 고마움과 옛 추억을 나눈다고 합니다. 어린 아들을 걱정했던 엄마와 제자의 길잡이가 돼 준 선생님, 그리고 바른 청년으로 자란 그 옛날 꼬마의 훈훈한 만남이 될 것 같습니다.
[아직 살만한 세상]은 점점 각박해지는 세상에 희망과 믿음을 주는 이들의 이야기입니다. 힘들고 지칠 때 아직 살만한 세상을 만들어가는 ‘아살세’ 사람들의 목소리를 들어보세요. 따뜻한 세상을 꿈꾸는 독자 여러분의 제보를 기다립니다.
문지연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