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자에게 “애인하자”던 교수…‘갑을’ 속 ‘나쁜 손’ 판친 대학가

입력 2018-02-27 10:24

성폭력 피해 경험을 공개하는 ‘미투’(MeToo·나도 당했다) 운동이 각계각층으로 번지는 가운데 대학가에서도 그 불길이 거세지고 있다.

최근 각 대학 홈페이지 게시판과 페이스북 ‘대나무숲’ 페이지에는 학생들의 미투 고백이 연이어 등장하고 있다. 사제 간의 갑을(甲乙) 관계 안에서 발생한 성폭력 사건들이다. 특히 졸업 후 사회 진출 과정에서 교수의 입김이 큰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문화예술 전공 학생들의 피해 글이 다수 게시되고 있다.

예술대를 졸업했다는 A씨는 지난해 1월 주연으로 참여한 학과 공연에서 교수에게 누드를 강요받았다는 주장을 했다. A씨는 거부했으나 해당 교수는 ‘배우’라는 단어를 들먹이며 계속 알몸 출연을 강요했다고 한다. 이후 샤워가운을 입는 것으로 절충했으나, 촬영 당일 옷을 벗은 것처럼 보이게 하는 장치를 설치하도록 했다는 소식을 듣게돼 A씨는 하차를 결정했다.

A씨는 “그저 옷을 벗지 못하는 것이 아니다. 촬영 당일까지 나와 한마디 상의 없이 결정됐다. 작품적으로도 그 장면이 왜 필요한지 누구도 나를 설득하려고 하지 않았다”고 털어놨다. A씨는 교수가 했던 “배우의 마인드가 안 됐다” “한심하다” 등의 말이 큰 상처로 남았음을 고백하기도 했다.

또 다른 예술대 대나무숲에는 10년 전 겪었던 성추행을 폭로하는 글이 올라왔다. 글쓴이 B씨는 남성으로, 남성 교수에게 동성 간 성추행을 당했다고 주장했다. 개인 음악 지도를 하던 교수는 힘으로 B씨를 제압했고 키스를 시도했다고 한다. B씨는 “오랜 시간이 지났지만 나 같은 말도 안 되는 피해자가 일어나지 않길 바란다”고 적었다.


D대학의 한 단과대학 홈페이지 게시판에서는 교수의 부적절한 행위에서 도망쳐 나왔다는 피해자 C씨의 글도 볼 수 있었다. C씨는 “졸업을 앞두고 힘들었던 시절, 교수님이 방에서 껴안고 뽀뽀하려 (해서) 겨우 빠져나와 떨면서 도서관으로 향했다”며 “‘여행 가자’ ‘애인하자’라며 성추행하던 교수가 아직 교직에 몸담고 있다는 게 황당하다”고 말했다.

S대학을 졸업했다는 한 글쓴이는 “강사가 학생들을 성희롱하고 우리를 애인, 노예쯤으로 생각하고 인권을 무시하는 모습을 많이 봤다”며 “어디를 가든 우리는 꿈을 가진 사람이지 권력에 놀아나는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말하고 싶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피해자들의 용기있는 고백이 터져 나오면서 이들을 지지하며 함께 움직이는 ‘위드유’(With you) 운동도 확산되고 있다. A씨의 글에는 “배우 마인드가 덜된 게 아니다. 한심하지 않다”며 ‘#위드유’ 해시태그를 단 댓글이 달렸고, 대학 내에서는 문제 교수들의 사례를 취합하고 공동성명을 내는 등 집단적인 움직임을 보이는 단체도 있다.

서울예대 사진전공학회는 이 학교 교수였던 배병우 사진작가에게 성적 피해를 본 학생들의 제보를 받아 사실관계를 조사 중이다. 배 작가는 ‘소나무 시리즈’로 잘 알려져 있으며 2015년 정년퇴직했다. 그러나 최근 성추행 논란에 휘말렸다.

학회는 “배 전 교수의 부적절한 행적과 관련해 사실 조사 중이며 제보를 취합해 피해 사실을 학교 측에 전달할 예정”이라며 “이에 따른 대학본부의 공식적 입장을 예의주시하고 학생들 피해에 도움이 되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배우 겸 교수인 조민기가 재직했던 청주대 연극학과에서도 움직임이 일었다. 11학번 재학생과 졸업생 38명은 지난 24일 공동성명을 내 “피해 사실을 암묵적으로 묵인하고 등한시했던 지난날의 우리들은 모두 피해자이자 가해자였다”며 “다시는 침묵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문지연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