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은(85)은 한국 문학계의 얼굴이었다. 아이들은 교과서에 실린 그의 작품으로 한국문학을 배워왔다. 그런 그가 후배 문인을 성추행했다는 의혹에 휩싸였다. 고은은 침묵했다. 사생활 논란으로 도덕성이 의심받는 그의 작품을 교과서에서 삭제하는 것을 두고 갑론을박이 뜨거워지고 있다.
고은이 입을 열지 않고 있는 가운데 불과 10년 전에도 그가 공개적인 자리에서 성폭력을 일삼았다는 구체적인 증언까지 등장했다. 강연회 후 뒤풀이 자리에서 바지를 내리고 신체 주요 부위를 노출했다고 주장했다. 그의 성폭력은 공공연한 비밀이었다. 그저 천재적인 작가의 ‘기행’정도로 치부되어왔다.
비난여론은 빠르게 번졌다. 교과서에 실린 고은의 작품을 당장 삭제해달라는 요구도 빗발쳤다. 현재 중·고등학교 교과서 11종에 고은의 시·수필 등이 실려 있다. 작품을 삭제하는 것은 발행사와 저작자 권한이다. 이들은 교육당국이 정한 집필기준에 맞춰 책을 쓰지만 제외해야 할 작품, 저자 등에 대한 기준은 딱히 없다. 다만 교과서는 상시 수정·보완할 수 있기 때문에 저작자가 요청한다면 작품 제외를 검토할 수는 있다.
여론은 ‘작품 삭제’를 원하고 있다. 여론조사기관 리얼미터에 따르면 ‘성폭력 문화예술인의 작품을 교과서에서 지워야 하느냐’는 질문에 71.1%가 찬성 의견을 밝혔다. 문화예술인의 행실과 작품의 예술성은 분리해서 봐야하기 때문에 ‘삭제해선 안 된다’는 응답은 22.5%에 불과했다.
◇ ‘문학 작품 삭제’는 과도한 처사…성범죄 용인은 아냐
일각에서는 문학 작품을 작가행적과는 별개로 작품성만으로 평가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친일 행적 논란을 빚은 고(故) 서정주 시인 작품의 경우 문학성을 인정받아 교과서에 계속 실리고 있는 것을 근거로 들었다.
물론 성범죄를 용인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교과서에서 작품을 삭제하는 것은 과도한 처사라는 의미다. 최소한 작품을 평가할 때는 작가의 도덕성과 작품을 동일하게 봐서는 안 된다는 지적이다.
아울러 시인의 도덕성을 문제 삼아서 교과서에서 작품을 제외한다면 앞으로도 형평성을 유지해야 할 것이고, 그렇게 된다면 한국문학사가 거덜 날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있다.
박민지 기자 pmj@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