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못믿을 공정위… 리니언시 갑질 실무자 고발않고도 “했다”

입력 2018-02-27 02:09
뉴시스


보도자료엔 “고발” 버젓… 검찰 “허위사실 유포하나”
리니언시 법인만 고발 면제

담합 주도 실무자 고발해야

‘가습기’ 엉뚱한 회사 고발도


공정거래위원회가 영세한 대리점을 상대로 ‘리니언시(담합 자진신고) 갑질’을 한 유한킴벌리 실무자에 대한 검찰고발을 하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공정위 현행 규정은 리니언시를 한 사업자(법인)에 대해서만 검찰 고발을 면제하도록 돼 있다. 검찰은 공정위가 담합 주도 실무자에게 면죄부를 줘놓고 보도자료상에는 검찰에 고발 요청했다는 허위사실을 유포했다며 반발하고 있다.

26일 공정위에 따르면 유한킴벌리는 10여년간 영세한 대리점을 앞세워 정부와 공공기관이 발주한 위생용품 담합을 주도했다. 그러나 감사원이 조달청 감사에서 담합 혐의를 포착하자 대리점에 통보 없이 담합을 자수했다. 1순위로 리니언시를 하면 과징금이 면제된다는 점을 이용한 것이다. 그 결과 유한킴벌리는 과징금을 100% 면제받은 반면 본사가 하라는 대로 한 영세한 대리점들만 처벌을 받게 됐다.

공정위는 이 사건에 대한 보도자료를 배포하면서 유한킴벌리 실무자 5명을 검찰 고발했다는 내용을 누락했다가 갑질 논란이 불거지자 뒤늦게 홈페이지상에 이 내용을 추가했다.

그러나 국민일보 확인 결과 공정위는 유한킴벌리 실무자에 대한 고발 요청서를 검찰에 제출하지 않았다. 현행 공정위 리니언시 고시는 고발 면제 대상을 ‘사업자’로만 명시하고 있다. 담합 주도 실무자는 사업자가 아니기 때문에 고발해야 하는 게 원칙이다. 또 김상조 공정위원장은 취임 이후 불공정행위를 저지른 실무자에 대한 검찰 고발을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공정위는 관행이라는 이유로 개인 고발을 면제했다.

검찰은 법인이 아닌 개인에 대한 면제 규정이 미비한 만큼 고발을 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검찰 관계자는 “공정위가 맞지도 않은 규정을 근거로 개인고발을 하지 않으면서 보도자료상에는 검찰에 고발했다고 허위사실을 유포했다”고 말했다. 공정위는 뒤늦게 사업자뿐 아니라 실무자도 고발을 면제할 수 있도록 리니언시 고시를 개정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공정위는 이와 별개로 가습기살균제 사건 재조사 심의에서 엉뚱한 회사를 고발한 것으로 뒤늦게 밝혀졌다. 공정위는 지난달 가습기 살균제를 제조한 SK케미칼을 검찰 고발했다. 하지만 SK케미칼은 지난해 12월 인적분할을 했고 사명을 ‘SK디스커버리’로 변경했다. SK케미칼이라는 사명은 신설되는 회사가 이어받았다. 공정위는 책임이 있는 SK디스커버리에 고발과 과징금 처분을 내렸어야 했지만, 이름만 같을 뿐 과거 사건에 대한 책임이 없는 회사에 처분을 내렸다. 이 때문에 검찰은 SK디스커버리에 대한 수사와 기소를 할 수 없게 된 상황이다. 황영일 변호사는 “새로운 SK케미칼의 주주가 공정위를 상대로 손해배상을 청구할 소지도 있다”고 말했다.

제대로 전속고발권(공정위 고발이 있어야만 검찰이 기소 가능)을 행사하지 못하는 공정위에 대한 불신이 커지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전속고발권 폐지를 공약으로 내세웠지만 공정위는 검찰과의 추가 논의가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세종=이성규 기자, 조민영 기자 zhibag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