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부터 男 피겨 최강자 군림… 이번 올림픽에서 첫 金 따고 은퇴
美 크로스컨트리 사상 최초 金 딴 35세 엄마 선수 랜들도 설원 떠나
이상화·린지 본은 현역 연장키로
캐나다의 피겨스케이팅 스타 패트릭 챈(28)은 지난 17일 평창올림픽 남자 싱글 개인전 프리 프로그램에 나설 때 “이건 나를 위한 무대야, 1초 1초를 즐길거야”라고 중얼거렸다. 그의 스케이팅 기술과 연기는 여전히 흠잡기 어려운 수준이었다. 하지만 쇼트 프로그램의 실수를 만회하지 못한 챈의 최종 성적은 9위였다.
챈은 연기를 마친 뒤 공동취재구역(믹스트존)에서 슬프지만 후련한 표정으로 “이렇게 오랫동안 올림픽에서 경쟁할 수 있어 자랑스럽다”고 말했다. 우아한 스케이팅과 4회전 점프를 바탕으로 2008년부터 줄곧 남자 피겨의 1인자로 군림했던 그는 평창올림픽을 끝으로 은퇴했다. 그는 올림픽 전 “내 몸은 제가 20살이나 21살 때 했던 것을 견딜 수 없다”고 했다.
유독 올림픽 금메달과 인연이 없던 그는 지난 12일 캐나다의 피겨 단체전 우승을 이끌며 올림픽 금메달리스트의 이력도 챙기게 됐다. 한때 김연아와 함께 갈라쇼의 단골 손님이던 그는 이제 얼음판을 떠나 청중의 입장에서 피겨를 즐기겠다고 했다. 챈은 “내 삶의 다른 부분에서 금메달을 찾겠다”고 말했다.
미국 크로스컨트리 스키 선수 키컨 랜들(35)은 2002년 솔트레이크시티 올림픽 때부터 꾸준히 동계올림픽에 출전했지만, 이번 대회 전까지 메달이 없었다. 랜들은 지난 21일 여자 팀스프린트 프리 결승에서 자신의 첫 메달을 금메달로 따냈다. 미국이 크로스컨트리에서 얻은 사상 최초의 금메달이기도 했다.
랜들은 미국 선수단 가운데 유일한 ‘주부 선수’로 유명했다. “아들을 낳은 것을 계기로 스키 선수로서의 컴백을 추진하게 됐다”고 밝힌 적도 있다. 그는 “모든 엄마들에게 많은 영감을 주기를 바란다”는 말을 남겼다. 스포츠행정을 공부한 그는 이번 대회 기간 중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선수위원으로 선출됐다. 스키 선수 생활을 마무리한 이후에는 도핑 방지와 스포츠 분야의 성평등 연구에 주력하는 것이 랜들의 꿈이다. 그는 가족에게도 좀더 많은 시간을 쏟겠다고 했다.
캐나다의 쇼트트랙을 이끌어온 샤를 아믈랭(34) 역시 이번 대회를 끝으로 집으로 돌아가게 됐다. 각종 대회의 쇼트트랙 결승전마다 한국 선수와 함께 서 있던 그를 기억하는 국내 팬이 많다. 그는 “더 좋은 결과를 얻고 싶지만 이것은 쇼트트랙이었다”며 몸의 한계를 인정했다. 흑인으로서 동계올림픽 사상 첫 금메달을 따냈던 미국 스피드스케이팅 대표팀의 샤니 데이비스(35)도 자신의 6번째 올림픽인 평창올림픽을 마무리했다.
마지막 불꽃을 태우겠다고 예고했던 동계스포츠의 스타들 가운데 현역 연장의 꿈을 피력한 이들도 있다. 미국의 ‘스키 여제’ 린지 본(34)은 “다음 시즌에도 기회가 있다”며 “월드컵 최다 우승과 남자 선수들과의 경쟁 등 또다른 목표를 향해 도전할 것“이라고 했다. 달릴 때마다 넘어지고 실격당하며 불운의 아이콘이 된 영국 쇼트트랙의 엘리스 크리스티(28)는 “(2022년 올림픽이 열리는)베이징에 돌아오겠다”고 선언한 상태다.
부상 역경을 딛고 은빛 질주를 펼쳐 온 국민을 울렸던 스피드스케이팅의 이상화(29)도 당장 은퇴하지 않을 계획임을 시사했다. 이상화의 어머니도 “마지막이라 생각해 눈물을 흘렸는데, 다시 할 줄 몰랐다”며 “1∼2년 더 한다고 하니 안쓰럽기도 하지만 벅차다”고 말했다.
이경원 기자 neosar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