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문점’이 돼버린 워커힐… ‘김영철 베이스캠프’서 잇단 회담

입력 2018-02-26 16:09

서울 동쪽 끄트머리에 있는 워커힐 호텔이 26일 ‘판문점’ 역할을 하고 있다. 통상 판문점에서 열리곤 하던 ‘남북 고위급 회담’이 이날 워커힐에서 이어졌다. 평창올림픽 개막식에 참석했던 김여정 북한 노동당 제1부부장이 서울과 평창, 청와대와 국립국장 등 여러 장소를 옮겨 다니며 다양한 행사에 모습을 드러낸 것과 달리 김영철 통일전선부장이 이끄는 폐막식 대표단은 워커힐을 ‘베이스캠프’처럼 활용했다.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과 김영철 부장은 이날 워커힐에서 비공개 오찬 회담을 가졌다.북미대화와 남북정상회담 추진 방안 등을 논의한 것으로 보인다. 회담에 앞서 아침 일찍부터 워커힐 주변에는 경찰과 경호인력이 대거 배치됐다. 정부 관계자들이 수시로 호텔 안팎을 오가며 회담 준비에 분주한 모습을 보였다.

회담에는 남측에서 정 실장과 천해성 통일부 차관, 북핵 6자회담 수석대표인 이도훈 외교부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 등이 참석했다. 북측에서는 김영철 부장과 이선권 조국평화통일위원회 위원장 등이 자리했다. 애초 정 실장은 청와대에서 열리는 문 대통령과 류옌둥(劉延東) 중국 국무원 부총리의 회동에 배석할 예정이었으나 북측과의 오찬회담 때문에 불참했다.

정부 관계자는 “현재 진행되고 있는 남북 회동은 판문점 고위급 회담의 워커힐판이라고 생각하면 된다”며 범정부 차원의 외교안보 고위급 회담이 릴레이처럼 이어지는 상황을 설명했다. 청와대 관계자는 “오늘 회담은 향후 남북관계와 한반도 문제를 풀어가는 분수령”이라고 말했다. 한반도 평화 정착에 필수적인 북미대화의 이견을 조율하고 중개하는 자리임을 시사한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류옌둥 부총리 면담에서 “북·미 대화가 조기에 이뤄질 수 있도록 중국의 지속적인 협력을 부탁한다”고 말했다. 류 부총리는 “북·미 대화가 이뤄질 수 있도록 중국과 한국이 함께 잘 설득해나가자”고 화답했다.

문 대통령은 청와대에서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의 특별대표 자격으로 평창 동계올림픽 폐회식 참석을 위해 방한한 류 부총리와 만나 “최근 북한이 북·미 대화에 적극적으로 나설 의향을 보이고 있고, 미국도 대화의 필요성을 얘기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이어 “미국은 대화의 문턱을 낮출 필요가 있고, 북한도 비핵화 의지를 보여야 한다. 그래서 미국과 북한이 빨리 마주 앉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문 대통령은 또 “평창올림픽을 계기로 이뤄진 남북대화의 분위기를 올림픽 이후까지 지속해 나가는 것이 대단히 중요하다”고 언급했다. 면담은 1시간가량 진행됐다.

류 부총리는 “평창올림픽은 남북 관계와 한반도 정세 완화의 계기를 가져왔다”며 “올해 들어 조성된 한반도 정세의 완화 추세를 중국은 기쁘게 바라보고 있다”고 답했다. 그는 또 “문 대통령이 기울인 노력을 높이 평가한다”며 “대회와 한반도 정세 면에서 이번 올림픽은 사람들의 기억에 영원히 남을 것”이라고 말했다.

태원준 기자 wjta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