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철은 왜 ‘2박3일’로 왔을까… 결과물 만드는 ‘실무형‘ 방남

입력 2018-02-26 09:06

김영철 북한 노동당 부위원장 겸 통일전선부장은 25일 저녁 강원도 평창에서 동계올림픽 폐회식에 참석한 뒤 26일 0시20분쯤 서울 숙소에 도착했다. 방남 이틀째인 이날 일정과 관련해 통일부는 줄곧 “확정된 건 없다”는 말을 되풀이했다. 북한 대표단은 서울에서 하루를 더 묵은 뒤 27일 북으로 돌아간다. 이 같은 ‘2박3일’ 체류는 조금 미묘하다.

폐회식이 밤에 진행된 터라 하루를 묵고 26일 몇 가지 회담을 소화한 뒤 돌아간다면 ‘올림픽+남북대화’의 일정으로 자연스러워 보일 텐데, 그는 서울에서 하룻밤을 더 보낼 계획으로 왔다. 올림픽보다 대화에 비중을 두고 있다는 뜻이 되며 김여정 노동당 제1부부장의 방남 때와 달리 ‘방문’ 자체보다 ‘내용’에 목적이 있음을 말해준다.

평창 개회식에 왔던 북한 고위급 대표단이 ‘상징적’ 인사들로 구성됐다면 ‘폐회식 대표단’은 실무형이다. 남북관계를 담당하는 통일전선부장이 단장을 맡았고 대미업무를 수행하는 외무성 당국자도 포함됐다. 북측은 김여정을 보내 남북대화 의지를 전한 뒤 김영철을 보내 구체적인 로드맵 등 ‘결과물’을 만들려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김영철 부장은 26일 하루 종일 국내 관계 당국 인사들과 ‘릴레이 회동’을 할 것으로 보인다. 남북관계 주무부처인 통일부 조명균 장관과 대북업무에서 중요한 비중을 갖고 있는 서훈 국가정보원장, 대미관계를 맡는 외교통상부 측과도 만날 가능성이 있다. 대표단장인 김영철이 직접 참석하는 자리, 외무성 당국자 최강일 등 실무선에서 접촉하는 자리 등이 연쇄적으로 마련될 듯하다.

김영철 부장은 25일 문재인 대통령과의 비공개 면담에서 북·미 대화에 명시적으로 긍정적인 뜻을 밝혔다. 다만 비핵화에 대한 입장 표명 없이 원론적 수준의 대화를 언급한 것으로 전해졌다. 만약 김영철의 발언이 핵보유국 지위를 바탕으로 한 북·미 대화를 언급한 것이라면 북한의 기존 입장과 크게 달라지지 않은 ‘립서비스’에 불과하다. 미국은 북한이 비핵화를 위한 행동을 보여야 대화에 나설 수 있다는 입장을, 우리 정부 역시 비핵화를 위한 논의가 없는 남북 대화와 북·미 대화는 어렵다는 입장을 견지해 왔다.


26일 이어질 남북 회동은 이 같은 첫 발언에 ‘살’을 붙이는 과정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문 대통령은 북한 대표단에 비핵화를 전제로 북·미 대화에 나서야 한다는 뜻을 전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대해 김영철은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의 남북 관계 개선 의지를 전달하고, 북·미 대화를 할 용의가 있다고 밝혔다. 김영철 발언은 남북 관계를 개선해 북·미 대화를 견인하겠다는 문 대통령의 구상에 일부 동조한 것으로 해석된다.

김영철 부장의 입장에서도 ‘김정은 위원장의 의지’를 갖고 온 이상 어느 정도 결과물을 만들어 돌아가야 하는 상황이다. 이를 위해 ‘협상’ 수준의 대화에 필요한 물리적 시간을 확보하려 ‘2박3일’이란 스케줄을 짰을 가능성이 크다.

태원준 기자 wjta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