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희 향수, 그 시절은 과연 아름다웠을까”

입력 2018-02-26 08:08
만화가 김성희씨가 최근 서울 여의도 국민일보 사옥에서 1980년대 강원도 탄광촌을 배경으로 그린 신작 ‘너는 검정’을 넘기고 있다. 사진=이병주 기자

1980년대 정선 탄광촌이 무대…
예전 탄광 검은 돈에 쫓겼다면
지금은 카지노의 검은 돈에 쫓겨
사회의식에 천착해온 이유는 우리 삶에 가장 가깝기 때문

삼성 반도체공장 백혈병 문제를 다룬 ‘먼지 없는 방’, 서울 용산 참사와 철거민을 그린 ‘내가 살던 용산’, 비혼(非婚) 여성의 삶을 담은 ‘오후 네 시의 생활력’…. 만화가 김성희(43)씨가 그동안 내놓은 작품들이다. 신작 만화 ‘너는 검정’(창비·표지)을 낸 김 작가를 최근 서울 여의도 국민일보 사옥에서 만났다.

이 작품은 1980년대 강원도 정선군 고한읍 탄광촌이 무대다. 사회의식 강한 주제에 줄곧 천착해온 이유가 궁금했다. 그는 “주류 만화에서 잘 다루지 않아서 그렇지 우리 삶에 가장 가까운 이야기들이라고 생각한다. 일터나 집은 보통사람들이 사는 문제”라고 담담하게 말했다. 작가가 삶에 대해 처음 고민을 시작한 건 열 살 무렵이다. “친구들에게 따돌림을 당했다. 왜 날 따돌리느냐고 물었을 때 돌아온 답은 ‘넌 말이 없어서’였다. 나는 과연 그 답이 맞는지 오래 고민했다. 만화방 구석에 앉아서 온갖 책을 읽으면서.” 본격적으로 만화에 관심을 갖게 된 건 대학 시절 학보에 만평을 그리면서다. 하고 싶은 것을 선택할 수 있을 만큼 마음이 단단해진 뒤 처음 선택한 만화가 그의 직업이 됐다.

‘너는 검정’은 신산한 탄광촌을 배경으로 주인공 창수의 성장기를 담고 있다. 사내아이들의 거친 말과 다툼이 사실적이다. 어떻게 그리게 됐을까. “박근혜 전 대통령이 막 당선됐던 때 구상했다. 그가 당선된 게 부친인 박정희 전 대통령에 대한 향수 때문이란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그리워하는 그 시절이 과연 아름다운지 창수를 통해 돌아보고 싶었다.”

창수의 모델은 작가와 가까운 지인이다. “실제 모델을 인터뷰한 뒤 그보다 다섯 살 아래인 남자와 열 살 위인 남자를 더 만나 창수를 만들어냈다. 지금은 카지노가 들어섰지만 모델이 살던 그 마을 곳곳을 따라 걸으며 취재를 했다. 예전엔 여기가 탄광의 검은 돈에 쫓기는 곳이었다면 지금은 카지노의 검은 돈에 쫓기는 듯한 분위기를 느꼈다.”

작품 속 창수는 뒷돈을 챙기는 교사들에게 항의하다 학교에서 쫓겨난다. 왜 ‘너는 검정’일까. “온통 시커먼 탄광촌의 어둠을 뜻하기도 하고 암울한 그 시대를 가리키기도 하고 뭔가 겹겹이 여러 가지 감정이 쌓여있는 창수의 사춘기를 의미하기도 한다. 누구에게나 그런 시간이 있지 않나?” 그의 말대로 누구에게나 검정으로 기억되는 시간이 있다. 세밀한 선으로 그려진 거친 배경과 굵은 선의 투박한 인물 그림을 보노라면 나도 모르게 그 암흑의 시간으로부터 얼마나 떨어져 있는지 가늠해보게 된다.

강주화 기자 rula@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