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평창 동계올림픽 쇼트트랙 여자 3000m 계주 결승에서 언니들인 김아랑(23), 심석희(21), 최민정(20)과 함께 출전한 19세 신예 김예진은 올림픽을 마치면서 아버지 김현(47)씨에게 언니들에 대한 칭찬부터 쏟아냈다.
쇼트트랙 여자 3000m 계주에서 한국 대표팀이 금메달을 수확한 직후 주요 포털 사이트 실시간 검색어 상위권엔 김예진이 올랐다. 4명의 주자 중 가장 어렸지만 침착하게 역주를 펼치며 제몫을 다한 김예진에게 국민적 관심이 몰린 것이다.
김현씨는 25일 “정말 열심히 하는 선배 선수들과 함께 예진이가 국민들의 염원에 금메달로 보답을 해줘 아버지로서 고맙다”고 소감을 밝혔다. 특히 어릴 적 큰 부상을 입었음에도 이를 이겨낸 딸이 대견스러울 따름이다.
김예진은 6세 때 사촌 오빠를 따라 스케이트를 처음 탄 후 재능을 보여 코치들의 권유로 본격 빙상에 입문하게 됐다. 김예진이 중학교에 들어가자 어머니 김현정(45)씨는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본격 뒷바라지에 나섰다.
유소년 때부터 전국대회에 입상하며 재능을 보였지만 김예진은 초등학교 6학년 때인 2011년 시합 도중 넘어지면서 속도를 줄이려다 자신의 스케이트날에 발목이 찢어지는 큰 부상을 당했다. 36바늘이나 꿰맨 뒤 트라우마로 고생한 김예진은 고등학교 1학년 때야 이를 이겨냈다. 아버지 김씨는 “부상과 후유증으로 속도를 내다가도 멈칫 멈칫 하는 게 보였다”며 “부상 이후 완전히 기량을 회복하는데 어려움을 겪었다”고 언급했다.
부상 뿐 아니라 힘든 선수 생활이 이어지자 고민의 시기도 있었다. 중학교에 막 입학했던 2012년 초 김예진은 운동을 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학업 부담이 늘어난 중학교에 들어가면서 운동을 함께 병행하는 것이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김씨는 “새벽과 저녁엔 운동을 하고 학교 생활에도 신경을 써야 하는 등 자기 생활이 전혀 없어 예진이가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다”며 “운동을 하지 않는 친구들을 조금은 부러워했다”고 회상했다. 1개월가량 스케이트화를 벗었던 김예진은 다시 구슬땀을 흘리기 시작한다. 이듬해인 중학교 2학년 때부터는 본격적으로 열심히 하겠다고 밝힐 정도로 열의를 가지게 된다. 김씨는 “철이 들면서 자신의 장래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한 것 같다”고 설명했다.
이번 올림픽 출전을 앞두고 김예진은 부모에게 “시합 관련해서는 제가 잘 준비할테니 금메달을 기대하세요”라고 어른스럽게 말하기도 했다. 어린 나이에 부담감이 없지는 않았지만 침착하게 제 몫을 다하며 금메달을 일궈냈다.
쇼트트랙 여자 3000m 계주 결승이 열린 지난 20일 김예진은 관중석에 아버지 김씨의 모습이 보이지 않자 아쉬워했다. 직장 생활 중인 김씨가 빠듯한 일정에 강릉아이스아레나를 찾지 못했기 때문이다. 다양한 조언으로 자신을 다잡아주는 아버지 김씨의 빈자리가 느껴졌지만 김예진은 혼신의 레이스를 펼쳤다.
지난 23일 쇼트트랙 대표팀 공식 기자회견에서 김예진은 “계주 결승 때 민정 언니가 결승선을 통과하던 순간이 가장 기억 남는다”며 “어려움이 있을 때도 서로 믿고 다 해결해나가고 극복해나가는 게 감격스러워서 눈물 많이 흘렸지만 정말 행복했던 기억으로 남을 것 같다”고 금메달의 환희를 밝혔다.
평창 동계올림픽을 마쳤음에도 김예진의 시선은 벌써부터 4년 후 베이징 동계올림픽을 향하고 있다. 베이징올림픽에서는 단체전 외에 개인전 출전까지 목표로 하고 있다. 김예진은 “국가대표가 되는 게 첫 목표였는데 이뤄냈다”며 “앞으로 더욱 열심히 해 대표팀 에이스라는 얘길 들어 보고 싶다”고 말했다. 특히 김예진은 타고난 순발력으로 단거리에 강점을 가지고 있어 최민정이 아쉽게 실격으로 메달을 놓친 쇼트트랙 여자 500m에서 미래가 기대되는 유망주로 주목 받고 있다.
강릉=이상헌 기자 kmpaper@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