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덜란드 ‘상패’ 피해자 “선수들이 사과한 적 없다”… “보상도 無”

입력 2018-02-25 13:18 수정 2018-02-25 13:52

네덜란드 스피드스케이팅 남자 팀추월 대표팀이 “상패에 맞은 피해자를 만나서 사과했다”고 밝혔지만 피해자는 “만난 적 없다”고 반박했다. 심지어 스벤 크라머는 SNS에 올렸던 한국어 사과문을 평창 동계올림픽 폐막식인 25일, 게시한 지 이틀 만에 삭제했다.

네덜란드 남자 팀추월 선수들은 21일 강릉 라카이 리조트에 위치한 ‘홀란드 하이네켄 하우스’에서 동메달 수상을 기념하는 행사에 참석했다. 홀란드 하이네켄 하우스는 네덜란드 올림픽위원회와 네덜란드 맥주 업체인 하이네켄에서 올림픽 관람객들이 자국 음식을 즐기며 경기를 볼 수 있도록 마련한 장소다. 선수들은 이날 행사 주최 측인 네덜란드 올림픽위원회로부터 받은 거대한 메달 모양의 상패를 관객석에 던졌다. 객석에 있던 한국인 여성 두 명이 상패에 맞았고 그 중 한 명은 이마 부근을 크게 다쳤다. 크라머는 22일 기자회견을 열고 “불미스러운 일에 대해 사과하고 싶다”고 밝혔다. 한국어로 된 사과문을 인스타그램에 올리기도 했다. 네덜란드 올림픽위원회 측은 “선수들이 다친 두 여성을 만나 사과했고 안전히 집에 돌아간 것도 확인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마를 크게 다쳤던 피해자 Y씨 입장은 달랐다. 서울 목동에 거주하는 30대 여성 Y씨는 25일 국민일보와 전화통화에서 “선수들과 통화하거나 만나서 사과받은 적이 없다”고 밝혔다. Y씨는 “기자회견이 끝나고 오후 3시30분쯤 행사 주최 측에서 연락이 와 두 가지 제안을 했다”며 “너무 어이없는 제안들이었다”고 말했다.

Y씨에 따르면 주최 측은 선수들과 식사할 자리를 마련하겠다고 했다. 직접 사과하겠다는 의미였다. Y씨는 “크라머가 ‘이미 사과를 했다’고 기자회견에서 거짓말한 걸 봤기 때문에 나가고 싶지 않았다”며 “기분이 너무 나빴다”고 했다. 다른 제안은 경기 티켓을 주는 거였다. 주최 측은 Y씨에게 “티켓을 줄 테니 강릉에 다시 와라”라고 했다. Y씨는 “새벽에 크게 다쳐서 그날 오전에 겨우 집에 온 사람한테 다시 강릉에 혼자 오라고 하는 게 상식적으로 말이 되냐”며 “당연히 거절했다”고 말했다. Y씨가 모든 제안을 거절하자 주최 측은 “원하는 게 뭐냐”고 물었고, Y씨는 “내가 뭘 원해야 하냐. 나는 원하는 게 없다”고 답했다고 한다.

Y씨는 “알고 보니 나 말고 다친 다른 여성 분께 현장에서 사과했다더라. 그분은 크게 다치지 않아 현장에서 바로 치료를 받았는데 그때 사과했다는 거 같다”며 “하지만 크게 다친 건 나고, 기사에 많이 나온 것도 나다. 그런데 나한테는 사과하지 않아놓고 왜 기자회견에서 거짓말을 하냐”고 분통을 터트렸다. 다른 여성은 코가 살짝 긁히는 정도의 경미한 부상을 입었다.

Y씨는 사고 당시 주최 측이 보인 대처에 대해서도 지적했다. Y씨가 사고를 입은 것은 오전 12시45분에서 50분 사이였다. Y씨는 홀란드 하이네켄 하우스를 구경하려고 혼자 방문한 상태였다. 선수들이 온다는 것도 몰랐다. 갑자기 행사를 시작하기에 관객들 틈에 섞여 지켜보다가 봉변을 당했다. Y씨는 “그냥 서 있다가 갑자기 상패에 맞고 쓰러졌다”며 “머리를 짚어보니 이마가 푹 들어가고 피가 줄줄 터져 나왔다”고 설명했다. 이어 “사람들이 눈치 못 채고 환호하고 있길래 나 좀 도와달라고 앞사람들 옷깃을 마구 잡아당겼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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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행히 근처에 있던 안전요원이 사고를 알아채고 Y씨를 행사장 옆 칸에 마련된 의료실로 데려갔다. 의료실의 의사가 상처 부위를 지혈하고 Y씨 옷 전체에 묻은 피를 닦고 난 뒤 구급차가 도착했다. Y씨가 응급실로 출발한 건 새벽 1시쯤이었다. Y씨는 홀로 병원에 보내졌다. 현장에 있던 관계자 중 아무도 Y씨를 따라오지 않았다.

당시 병원에 중환자가 있어 Y씨는 약 1시간 동안 치료를 받지 못했다. 지쳐있던 Y씨에게 지혈을 도와줬던 의사로부터 “괜찮냐”는 전화가 왔다. Y씨는 “제발 아무나 좀 보내달라”고 부탁했다. 이후 Y씨가 신고해 경찰이 병원에 왔지만 그때까지 주최 측 관계자는 오지 않았다.

Y씨가 인스타그램에 공개한 사진. Y씨는 상처 아래쪽 2바늘, 위쪽 8바늘 총 10바늘을 꿰맸다.

새벽 2시40분쯤, 의사에게 다시 전화가 왔다. Y씨는 “한국어가 가능한 관계자를 바꿔달라”고 말했다. 한국인 보안요원이 전화를 받아 “관계자가 그쪽으로 가고 있다”며 “나도 곧 출발하겠다”고 했다. 하지만 출발했다던 관계자가 30분가량이 지나도록 오지 않았다. 행사장과 응급실은 차로 약 10분 거리였다. 결국 경찰이 행사장을 찾아갔고, 새벽 4시가 돼서야 주최 측 관계자가 병원에 와 Y씨를 만났다. Y씨가 “왜 이렇게 늦었냐”고 묻자 관계자는 “이건 문화의 차이다”라며 “네덜란드에서는 환자가 다치거나 아픈 모습을 안 보여주고 싶어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후 관계자는 “집으로 보내드리고 싶다”며 “돈을 드릴 테니 택시를 타고 가라”고 했다. Y씨는 “이 시간에 크게 다친 여성이 어떻게 혼자 택시를 타고 가냐”며 “무서워서 난 못 간다”고 거절했다. Y씨는 “결국 KTX를 타고 서울까지 왔다”며 “그것도 다쳐서 치료를 받고 있는 내가 먼저 표를 예매한 후에 돈을 받는 식이었다”고 전했다.

Y씨가 사고 당시 입고 있었던 옷.

Y씨는 “사과보다도 제대로 된 대응이 필요하다”고 했다. Y씨가 서울로 돌아온 뒤 주최 측은 “보험처리를 해야 하니 (Y씨가) 가입한 보험 회사를 알려달라”고 전화를 했다. 자신들이 가입한 회사가 Y씨가 가입한 회사에 연락해 일을 처리하겠다는 거였다. Y씨가 “그런 식으로 (피해 당사자인 나를 빼고) 일을 처리한다는 소리는 들어본 적이 없다. 이유가 뭐냐”고 묻자 주최 측은 “영어가 가능한 직원이 필요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Y씨는 “이해할 수 없어 보험 회사에 전화해봤더니 ‘말이 안 되는 소리’라고 하더라”라며 “주최 측에서 연결해 준 그쪽 통역사를 통해 연락해봤지만 답이 없었다”고 말했다. Y씨가 통역사에게 재차 문자를 보냈을 때도 통역사는 “(회사에서) 연락이 없다”라고만 했다.

Y씨는 “선수들이 오늘 귀국한다고 들었다. 주최 측 관계자들도 다음 날에 간다더라”라며 “난 누구와 연락해 보상받아야 하냐”고 토로했다. Y씨는 또 “하이네켄 한국지사 직원이라며 연결해준 통역사도 알고 보니 임시직이었다”라며 “전화해봤더니 ‘나는 어제부로 근무가 끝났다’고 하더라”라고 했다. 당황한 Y씨가 “직원이라고 하지 않았냐”라고 묻자 그 통역사는 “어제 통화할 때까진 직원이었지 않냐”라고 답했다고 한다. Y씨는 “모두 떠난다는 소식은 들었지만 그 통역사랑 연락하면 된다고 해서 안심했는데 막막하다”며 “치료도 계속 받아야 하고, MRI 결과도 26일에야 나온다. 응급실 진료비를 제외하고는 여태까지 병원비도 내가 다 냈다”고 호소했다. 이어 “아직도 상처 부근의 감각이 안 돌아온다”며 “이마를 총 10바늘을 꿰맸다”고 덧붙였다.

박은주 기자 wn1247@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