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스피드스케이팅 ‘장거리 간판’ 이승훈(30)이 동계올림픽 남자 매스스타트 초대 챔피언에 올랐다. 이 종목 세계랭킹 1위다운 이승훈의 경기 운용과 정재원(17)의 희생이 만들어낸 금메달이었다.
이승훈은 1위를 확정 짓자마자 정재원을 찾았다. 정재원의 팔을 번쩍 들며 영광을 후배에게 돌렸다. 이승훈은 관중들에게 인사를 건넬 때도 정재원과 함께였다. 태극기도 두 사람이 함께 들었다.
경기 직후 인터뷰에서도 이승훈은 정재원을 여러 차례 언급하며 고마운 마음을 드러냈다. 그는 코치진과 대표팀 동료들, 소속사, 후원사, 자원봉사자, 관중, 국민들에게 차례로 인사했다.
이어 “특히 함께 레이싱해준 (정)재원이에게 너무 고맙다”며 후배를 향한 고마움과 칭찬을 쏟아냈다. 그는 특유의 막판 스퍼트로 마지막을 장식한 순간을 떠올리며 “내 유일한 장점이라고 생각해 그 순간만을 기다렸다. 그렇게 하기 전까지 재원이의 도움이 있었다”고 말했다. 이어 옆에 선 정재원을 바라보며 “재원이가 나보다 훨씬 멋지고 좋은 선수가 될 것이라고 확신한다”고 뜻깊은 칭찬을 건넸다.
이에 정재원은 “우리 팀에 도움이 될 수 있어서 기쁘다. 승훈이 형이, 우리 팀이 금메달을 따서 정말 기쁘다”며 칭찬에 보답했다. 인터뷰 내내 그의 입에서는 연신 ‘우리 팀’이라는 말이 나왔다. 그러면서 “첫 올림픽인데 (팀추월에서) 메달도 땄기 때문에 의미 있다”며 평창올림픽이 자신에게 가장 기억에 남는 올림픽이 될 것을 확신하기도 했다.
띠동갑이 훌쩍 넘는 나이 차이에도 두 사람의 호흡은 완벽했다. 총 16바퀴를 달리는 남자 매스스타트에서 정재원은 경기 중반을 넘어설 때까지 2위 그룹 선두에서 리드했다. 페이스메이커 역할로 1위 그룹과의 거리가 벌어지지 않도록 홀로 바람을 맞은 것이다.
14바퀴를 돈 시점에서 이승훈이 앞으로 치고 나가자 정재원은 허리를 폈다. 표정에는 할 일을 다 했다는 안도감이 돌았다. 정재원은 “(이)승훈이 형이 치고 나가는 것까지 보고 ‘내 역할은 끝났다’는 생각을 했다. 그다음부터는 승훈이 형이 몇 등으로 들어가는지만 보고 있었다”고 설명했다.
든든한 조력자였던 정재원과 그의 질주를 헛되게 하지 않았던 이승훈. 결국 이승훈은 시상대 가장 높은 곳에 올랐고, 정재원은 메달리스트 못지않은 환호를 안았다.
문지연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