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축제도 끝나 가는구나”…올림픽 블루

입력 2018-02-24 09:58


강원도 강릉 시내의 한 옷가게에는 한 달째 ‘평창 동계올림픽 자원봉사로 영업시간을 단축한다’는 안내문이 붙어있다. 가게 주인 고모(58)씨는 오전에 한두 시간 잠깐 가게를 열었다가, 점심 때에 강릉 스피드스케이팅 경기장으로 출근하는 생활을 반복 중이다. 고씨는 “고향인 강릉에서 열린 올림픽이기 때문”이라며 “봉사기간 동안 수입은커녕 가게 임대료 등 고정비만 빠져나간다”고 했다.

그런데도 고씨는 얼마 남지 않은 올림픽 기간이 아쉽기만 하다. “힘든 일도 많았지만 자원봉사자들은 서로를 보며 ‘이제 끝이구나’라며 아쉬워해요. 이럴 줄 알았으면 패럴림픽 자원봉사도 신청할 걸 그랬어요.”

평창올림픽 폐회식이 코앞으로 다가왔다. 경기장이 마련된 평창과 강릉 등에선 올림픽이 끝나는 걸 아쉬워하는 이른바 ‘올림픽 블루(우울감)’ 증상이 생기고 있다. 국제 행사를 성공적으로 유치했다는 안도감과 더불어 활기찼던 지역 분위기가 ‘하룻밤의 꿈’처럼 지나가는 데 따른 허탈·공허함이 밀려든다는 것이다.

강릉 중앙시장에서 8년째 호떡집을 운영한 정흥권(43)씨는 23일 캐나다 국기가 그려진 털모자를 쓴 외국인 커플에게 호떡을 건네며 “다음 주면 이분들도 모두 돌아가겠네요. 처음으로 외국인 단골도 생겼는데”라고 아쉬워했다. 정씨는 “내가 언제 미국이나 캐나다 사람과 얘기를 해보겠느냐”며 “처음엔 어렵고 서먹했는데 자주 만나다보니 어느새 정이 들었다”고 했다.

평소 강릉을 찾는 외국인은 중국이나 일본 관광객 정도였다. 하지만 올림픽이 시작되면서 오륜기를 새긴 옷과 가방을 걸친 다양한 국가의 사람들이 경기장뿐만 아니라 강릉시내와 경포대 해변 등을 누빈다. 강릉 중앙시장에서 떡집을 운영하는 김월순(56)씨는 “외국에 한 번도 나가본 적 없지만 여기서 본 외국인들은 해맑고 순수했다”며 “이들이 떠난다니 휑한 느낌이 든다”고 말했다. 윤경남(52)씨는 “이 작은 도시에 올림픽이라고 많은 사람들이 왔는데 이제 다 빠져나가고 건물도 철거하게 될 것이다. 마음 한 구석이 허전하다”고 했다.

올림픽 기간 내내 연장 근무를 했던 환경미화원 이모(56)씨는 “외국인과 말이 통하지 않아도 손짓발짓하면 다 알아들어서 참 신기하고 좋았다. 마주치면 눈인사를 하고 ‘뷰티풀’이라고 해주던 이들을 못 본다는 게 섭섭하다”고 말했다. 택시기사 고명주(60)씨는 “개회식 때 시내가 북적북적했는데 지금은 썰렁하다는 느낌이 든다. 인구 30만명도 안 되는 강릉과 평창에서 이런 행사가 있었다는 건 평생 남을 기억”이라고 했다.

끝나가는 올림픽이 아쉬운 건 해외 자원봉사자들도 마찬가지다. 평창 올림픽플라자에서 자원봉사를 했던 아르헨티나인 엘레나(29)씨는 “1년 넘게 기다려 참여한 올림픽이 끝난다고 생각하니 아쉽고 서운하다”며 “나중에 남편과 함께 다시 한국을 찾을 계획”이라고 전했다.

강릉=양민철 강경루 황윤태 기자 liste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