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윤의 별명은 ‘호빵맨’이다. 동글동글한 얼굴 탓이다. 평상시 체중은 80㎏. 신장은 178㎝다. 과체중은 아니다. 순간적으로 폭발적인 속력을 내는 스피드스케이팅 선수에게 근력은 무엇보다 중요하다. 유독 근육량이 많아 무거울 수밖에 없다.
김태윤은 빙질이 무른 강원도 강릉 스피드스케이팅 경기장에서 이 체중이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올 시즌을 앞두고 체중을 감량했다. 줄어든 몸무게만큼 다른 경기장에선 다소 힘을 잃었다. 2017-2018 국제빙상연맹(ISU) 스피드스케이팅 1~4차 월드컵 합산 순위는 15위. 이 순위로는 올림픽 메달은커녕 10위권 진입도 장담할 수 없었다.
걱정하지 않았다. 오직 올림픽만 생각했다. 강릉의 빙질에 적합한 체중을 만들기 위해 체중 감량을 포기하지 않았다. 동글동글했던 얼굴에 턱 선이 드러날 정도였다. 그 결실은 23일 밤 강릉 스피드스케이팅 경기장에서 열린 2018 평창 동계올림픽 남자 1000m 동메달로 돌아왔다. 김태윤은 1분8초22로 결승선을 3위로 통과했다. 금메달을 차지한 키엘트 누이스(1분7초95·네덜란드)와는 0.27초 차이다.
김태윤의 삶은 쭉 뻗은 빙속의 트랙처럼 순탄하지 않았다. 김태윤은 초등학교 2학년 때 아버지의 권유로 스피드스케이팅 선수의 길에 들어섰다. 초중고 대회에서 잇따라 우승컵을 들어올리며 엘리트 코스를 밟아왔다. 하지만 그의 앞에는 항상 굴곡이 있었다. 스케이트를 시작한 직후에 희귀병을 앓았다. 무릎 바로 아래 정강뼈 위쪽의 앞부분이 튀어나와 통증을 느끼는 질환이다. 스케이터에게 치명적일 수 있지만 김태윤은 이 병도 이겨냈다.
2015-2016 시즌에는 왼쪽 무릎과 허리 부상을 입었다. 2016년 12월 큰 좌절도 맛봤다. 삿포로 동계아시안게임 금메달을 목표로 출전한 국가대표 선발전에서 넘어져 태극마크를 놓쳤다. 앞서 2014 소치 동계올림픽에 국가대표로 출전했고, 2016 세계스프린트대회에서 종합 5위를 차지해 상승세를 타고 있을 때였다. 하지만 곧바로 일어났다. 평창으로 목표를 전환하면서였다.
한국 빙속은 김태윤의 등장으로 또 하나의 ‘깜짝 스타’를 만들었다. 김민석은 앞서 지난 13일 폭발적 스피드와 지구력을 동시에 요구하는 1500m에서 동메달을 목에 걸었다. 아시아 선수로는 처음으로 이 종목 올림픽 메달리스트의 영예를 차지했다. 지난 21일 남자 팀추월에서 이승훈·정재원과 은메달도 합작했다.
그 사이 차민규는 19일 모태범 이후 8년 만에 500m에서 은메달을 획득했다. 같은 경기에서 경신되기는 했지만 올림픽 신기록까지 세우며 전 세계를 깜짝 놀라게 했다. 한국 빙속은 이상화의 여자 500m 은메달을 포함해 모두 5개의 메달을 수확했다. 은메달 3개, 동메달 2개다.
김태윤은 경기를 마치고 믹스트존(공동취재구역) 인터뷰에서 “뜻하지 않게 메달을 획득해 꿈만 같다. 정말 기분이 좋다. 체중 감량으로 많은 도움이 됐다. 바꾼 주법도 도움이 됐다”며 “메달을 예상하지 못했다. ‘톱10’ 안에만 들겠다고 생각했다. 어떻게 해야 속도를 낼 수 있는지, 어떻게 몸을 관리해야 하는지 많이 공부할 수 있었다. 올림픽이든 국제대회든 앞으로 자신감을 갖고 준비할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김철오 기자, 강릉=이상헌 기자, 사진(강릉)=김지훈 기자 kcopd@kmib.co.kr